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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May 05. 2022

"너도 롤 모델 한번 정해봐"

[ 01. 요즘 것들의 사생활 먹고사니즘 : ep.04/회사 ]


사실 내가 길고 긴 퇴사 생각을 시작한 건 소위 직장인들이 말하는 일상과 일에서 오는 ‘현타’만이 아니었다. 일종의 트리거가 되는 질문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현상이 끝나고 광양의 다른 아파트 프로젝트의 사업계획승인을 준비하면서 있었다. 휴가를 다녀온 뒤에는 이 프로젝트를 했는데 어느덧 나는 또 매일 10시, 11시까지 야근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또 회사 근처 중국집으로 저녁 식사를 하러 갔는데 김 소장이 나와 우리 팀 신입사원인을 불러놓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회사에서 롤 모델을 한번 찾아봐.”


딱 나에게 필요했던 질문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지만, 미처 인지하고 있지 않았던 생각을 끌어내 준 질문이었다. 나중에 종종 김 소장이 덕분에 퇴사 생각이 시작됐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그 이유는 다 이 질문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회사에 ‘롤모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Role model, 롤모델: 

자기가 해야 할 일이나 임무 따위에서 본받을 만하거나 모범이 되는 대상.


없었던 이유는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한데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닮고 싶은 어른들의 부재다. 물론 단순히 주변 어른에게 좋은 모습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상을 모두 담고 있는 진짜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 없는 것이다. 나보다 5년, 10년, 20년 앞서 있는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하는 어른 중 내가 콕 짚어 닮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 이건 단연 커리어적으로도 그리고 인간적으로도 없었다. 다 각자의 상황이 있겠지만 모두 내게 부정적이거나 내가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모습만 보였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다들 무엇을 위해 일하길래 저렇게 차갑고 이기적이고 정치적으로만 보일까? 이미 나는 회사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롤모델이 없어.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예전에 우리 누나가 해준 말이 기억난다. 첫 회사를 퇴사할 때 점점 나아지겠지 했지만 나아지는 건 없었고 결국 5년 후, 10년 후 내 모습이 지금 나보단 연차가 10년 앞선 팀장의 모습이겠다고 하면서 퇴사했다고 한다. 이 생각은 나는 물론 우리 누나를 비롯해 많은 사회초년생과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것이다. 나의 미래의 모습은 어떻게 될까? 나도 5년 뒤에는 우리 팀 과장님 모습일까? 그 후에는 차장님, 부장님 결국에는 소장님처럼 되는 걸까? 내가 노력해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 회사 구조에 의해서 내가 저런 틀에 갇히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감싸았다. 하지만 난 그렇게 되긴 싫은데, 더 좋은 미래가 없는 걸까?


질문을 받은 후 며칠이 지난 후 알게 되었지만, 애초에 나는 존경하는 사람, 롤모델이 별로 없었다. 초등학교 때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숙제를 받으면 당혹스러웠다. 나는 내 삶을 누구랑 똑같이 살고 싶지는 않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겠지. 다른 친구들은 미디어에 나온 사업가, 과학자, 연예인 하다못해 부모님을 꼽는데 나는 그 롤모델이 뭐라고 그렇게 한 ‘인물’로 내 삶의 미래를 그리는 게 싫었을까? 어쩌면 그때부터 요즘 세대들이 말하는 레퍼런스만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나는 존경하는 인물 보다는 여러 레퍼런스에서 좋은 점을 닮아 제일 ‘나’ 다운 삶을 살고 싶어 했다. 이건 내가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본성이고 성향이다. 그래서 롤모델이란 질문이 들어왔을 때 당연히 없는 게 마땅했다. 그런데도 내가 30여년 정도 살면서 몇몇 존경하는 인물들이 있었다.


인생의 롤모델까지는 아니어도 존경하는 사람은 몇 있다. 첫 번째 우리 아빠와 엄마. 이건 아빠와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우리를 키우며 삶을 지켜왔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 집이 빚에 허덕이면서도 어떻게든 사업을 하셨고 그 사업이 무너졌을 때에도 아빠와 엄마는 누나와 나를 놓지 않고 사랑으로 키우셨다. 이 힘든 일이 심지어 머나먼 타지, 태국에서 일어났다고 하면 믿을까? 비자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 태국에서 생활했지만 부모님은 끝까지 자식에 대한 책임을 다하셨다. 그리고 요즘은 정년 퇴직을 넘긴 연세에도 다시 아빠의 꿈을 향해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존경스러울 수 밖에 없다. 물론, 이건 많은 자식이 공감하지 않을까? 그래서 부모님을 존경한다.


그럼 내가 부모님 외에 좋아하며 존경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내 고등학교 시절을 불태웠던 두 명이 존경스러운 사람이 있다. 한참 기타와 음악에 뼈져 살던 나는 기타리스트 이병우와 영국 맨체스터 출신 밴드 오아시스의 노엘 갈리거를 좋아했다. 정말이지 내 노트북 배경 화면을 꽤 찼을 정도이니까. 기타리스트 이병우는 오스트리아에서 기타 공부를 했고 당시 음대에 가고 싶던 나의 꿈을 이룬 사람이었다. 물론 그의 음악은 말할 것도 없이 좋고 좋아했다. 클래식기타를 많이 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기타를 저렇게 칠 수 있다면 좋겠다며 열심히 연습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다른 한명인 오아시스의 노엘 갈리거. 동생 리암이 아닌 노엘이 좋았던 건 단순히 그가 작곡을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 노엘과 이병우는 여기서 이어진다. 둘 다 끝내주는 작곡가다. 물론 장르나 스타일은 달라도 그들의 창조적인 능력에 나는 매료되어 한창 꿈꿀 나이인 고등학교 때 마음을 다해서 그들을 존경하고 사랑했다. 그 후에는 존경한 인물이 마땅히 없다. 우리 학교 출신이라는 영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도 내 마음을 사로잡진 못했으니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OO 건축에서 내 롤모델을 찾을 수 없는 이유를 알았다. 나는 애초에 건축가를 동경하지도 존경하지도 않았었다. 일하면서 수많은 건축가를 만나고 곁에서 봐왔지만 나는 내가 본 건축가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이런 힌트가 내 삶에 많이 있었는데 정말 끈기 있고 꾸준하게 건축을 공부하고 업으로 삼아서 일해왔다. 그래서 김 소장의 질문이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그리고 트리거가 된 질문이었다. 그리고 김 소장이 이어서 한 말은 더욱더 나를 퇴사라는 방향으로 빠르게 이끌어 주었다.


“야근 할 때 초과근무 신청은 하지 마. 그래야 너희 연봉이 1%라도 더 오를 수 있어”


뭐지? 이 개 같은 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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