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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민 Apr 30. 2023

공간은 불멸이다

그리움은 하늘과 바다에

  - 그리움은 하늘과 바다에


  옷장을 열었다. 자주색 코트를 입었다.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입으셨던 코트이다.

  근육이 소실되어 왜소해진 어머니의 약한 어깨와 허리에 옷은 거추장스러운 짐이었다. 어머니는 한겨울에도 얇은 블라우스나 티셔츠를 찾았다. 조금이라도 부피가 느껴지는 옷은 거절했다.

  하루는 어머니가 사위들을 불렀다. 안방 침대를 버려달라 하셨다. 주무시기 불편하다고 말렸지만 이기지 못하고 사위들은 침대를 아파트 재활용장에 내려놓았다.

  어떤 날은 이제 다시 맞이할 계절은 없으신 듯 어머니는 철 지난 옷을 넣어 둔 서랍장을 비워놓았다. 손자나 손녀들이 오면 한가득 차려냈던 접시며 그릇들이, 큰 냄비가 또 수저세트가 싱크대 그릇장에서 사라졌다. 어찌 그 무거운 걸 다 끄집어내 버리셨는지, 그걸 내놓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마음이 불편하고 아팠다.


  겨울의 끝자락이 자취를 감추려 할 때 어머니를 보내드렸다. 세 자매는 당신이 손수 정리하시고 남아있는 것도 없는 어머니 옷을 나누었다. 나는 자주색 코트를 선택했다. 그리고 분홍 실크 스카프도 가지고 왔다. 병원에 모시고 갈 때마다 어머니는 제일 가볍다며 자주색 코트를 자주 입으셨다.

  어머니 옷장에서 옮겨온 자주색 코트는 그 해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내 옷장에서 보냈다.

  겨울 어느 날 나는 어머니 코트를 처음으로 입었다.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아, 내 손에 잡힌 건 어머니의 손수건이었다. 한쪽 모서리 레이스가 겉으로 보이도록 어머니 손으로 접은 모양 그대로 주머니 속에 있었다. 손수건에서 요양병원 침대에 누워 계신 어머니를 보았다. 그리고 주인 없는 아파트에서 안방을 차지하고 있던 어머니의 옷장과 빈 서랍장도.

  자식들이 당신의 물건을 정리하면서 겪게 될 슬픔조차 미리 차단해 주신 어머니의 깊은 마음과 마지막 사랑을 돌아가시고서야 알았다.

  이렇게 잘 키워주셨는데 어머니께 마지막 인사도 드리지 못했다. 감사하고, 고맙다고, 잘 가시라고. 다음에 만나자고.

  장례식을 끝내고 애도의 시간도 제대로 가지지 못하고 너무나 빨리 일상으로 돌아와 버린 현실이 슬펐다. 어머니 사망 신고를 마치고 핸드폰도 해지하고 온 날,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자주색 코트를 입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앙상한 겨울나무 가지가 시린 하늘에 박재되어 있다.

꼬리연은 하늘 높이 올라갔다.

나는 인연이 아쉬워 유리 풀 먹인 명주실에 손을 댄다.

연줄이 비명을 지르며 손에 잘린다.

연은 하염없이 흐르는 제 꼬리를 챙긴다.

나뭇가지 사이로 간발보다 짧은 꼬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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