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민 May 03. 2023

보랏빛 담은 바람은 거짓말

바람이 불어서

  - 바람이 불어서

     

  어렸을 때 나는 항상 긴 머리를 한 두 갈래로 땋고 있었다. 어머니는 유리병에 든 보라색 머릿기름을 발라 머리를 총총 땋아 주셨다. 네댓 살 때의 사진 속 모습도 6학년 때 사진도 땋은 머리인 걸 보면, 꽤 긴 시간을 땋은 머리로 지냈다.

  내가 학교에 입학한 뒤로 어머니는 아침마다 내 머리를 빗기고 나면 잊지 않고 하신 당부가 있었다. 

  “학교에 가서 아이들하고 머리 맞대지 마라. 머리카락에 이가 옮아오면 안 된다.”

  나는 머리를 다 땋은 후에도 자리에서 바로 일어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양손에 기름을 발라 머리카락이 한 올이라도 빠져나오지 않게 여러 번 쓰다듬어 준 후에야 나는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집을 지어 이사하기 전, 골목 건너 집에 유미가 살았다. 나와 나이가 같은 유미는 내 언니와 같은 나이의 언니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 자매는 가끔 골목에서 유미 자매와 놀았다.

  어머니가 외출하신 그날은 서울에서 내려오신 할머니께서 머리를 곱게 빗겨주셨다. 할머니는 나를 마루 끝에 앉혀놓고 어머니처럼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 매끈하게 땋아주셨다. 그리고 나는 대문 밖으로 나가 놀았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유미와 싸우게 되었다. 서로 옷도 잡아당기고 머리카락도 잡고서. 또 꼬집고 꼬집히기도 한 것 같다. 싸움의 결과는 어찌 되었는지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렇게 싸우고 집으로 들어왔다. 방금 전에 머리를 곱게 빗겨 내보낸 할머니께서 내 몰골을 보고 깜짝 놀라셨다.

  “머리가 왜 그러니?”

  나는 유미랑 싸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할머니, 바람이 불어서 머리카락이 다 엉클어졌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이다. 머리카락이 그 정도로 엉클어지려면 얼마나 센 바람이 불어야 하는가. 머릿기름을 발라 땋은 머리카락이 삐져나와 산발이 될 정도면 태풍 급 바람도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바람 핑계를 댔고, 할머니 앞에 돌아 앉아 다시 머리를 빗겨달라고 했다.

  “바람이 네게만 세게 불었나 보구나.”

  “네. 엄청 센 바람이 불었어요.”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할머니는 잠자코 내 머리를 풀어 다시 땋아주셨다. 

  어린 나는 바람 핑계를 대면 유미와 싸운 걸 감쪽같이 모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나 보다.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생각했을까.

  머리 빗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대문이 거칠게 열리고 유미 어머니가 유미 손을 잡고 마당에 들어오셨다. 그때 유미는 울고 있었다. 나는 겁이 나서 할머니 뒤로 숨었다. 

  “경주가 우리 유미를 여기도 할퀴고, 저기 할퀴고, 머리도 쥐어뜯어놓고. 여기 좀 보세요! 여기요! 경주할머니, 경주가 유미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놨어요!”

  싸울 때는 몰랐는데 유미 얼굴에도 팔뚝에도 내가 낸 손톱자국이 선명했다. 나는 유미 어머니께 한바탕 야단을 맞았다. 

  서울에서 아들집으로 며칠 쉬러 내려오신 할머니가 그 사건을 어떻게 수습하셨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불같이 화를 내던 유미 어머니와 그 옆에 울면 서있는 유미 모습이 지금도 사진처럼 선명하다. 그 상처가 유미 얼굴에 흉터로 남지나 않았을까.

     

  그 사건 이후, 바람을 이용한 나의 거짓말은 한차례 더 있었다. 

  새집이 완공되어 우리 가족은 학교 뒤에 있는 동네로 이사를 했다. 그때 나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그날의 조각난 기억들을 맞춰보면, 해가 질 무렵인 거 같다.

  이사 후에도 아직 집 공사가 남아 있어 어머니께서는 인부들의 참을 준비해야 됐다. 아마 그날은 심부름할 사람이 나밖에 없었나 보다. 그래서 어린 내가 두부 심부름을 가게 되었다. 

  나는 대문을 나와 철길을 건너 찬거리를 파는 가게로 갔다. 철길 건널목을 관리하는 간수가 앉아있는 작은 집 아래로 몇 걸음 더 내려가면 가게들이 있었다. 여러 채 이어진 집들 중 한 곳은 미장원이었고, 한 곳은 채소나 찬거리를 파는 가게였다.

  어머니를 따라 그 가게에 가본 적이 있어, 나는 어렵지 않게 두부 심부름을 할 수 있었다. 지금과 달리 그때는 콩나물이나 두부 같은 찬거리를 사려면 소쿠리나 쟁반을 가지고 가야 했다. 그릇을 가져가지 않으면 신문지나 갈색종이에다 둘둘 말아서 싸 주었다. 

  나는 어머니가 쥐어준 노랑 알루미늄 냄비 뚜껑을 들고 찬가게로 들어갔다. 그리고 무사히 냄비 뚜껑에 두부를 받아 집으로 향했다. 두 손으로 냄비 뚜껑을 잡고 두부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걸었다. 

  두부 심부름은 유치원생인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금 걷다 보니 냄비 뚜껑을 든 팔이 아프고 두부가 무거워졌다. 다행히 기차가 지나가지 않아 철길 건널목 앞에서 멈추지 않고 곧장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지금이야 길이 말끔하게 포장되어 있지만 그때는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이었다. 그래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또 재수가 없으면 개똥을 밟거나, 한눈팔다 물컹한 소똥에 발을 넣기 일쑤였다. 

  철길을 건너 몇 발자국 걸어가는데 그만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냄비 뚜껑에 가려 발밑을 제대로 보지 못한 탓이다. 내동댕이쳐진 두부에 흙과 잔돌들이 박혔다. 나는 가슴을 졸이며 허물어진 두부를 냄비 뚜껑에 담았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어머니께 야단 들을 생각에 걱정이 태산 같았다. 나는 짧은 순간 머리를 썼다. 이 상황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핑계를 댈 묘안이 생겼다. 

  ‘바람!’

  모서리가 뭉개지고 흙과 자잘한 돌들이 묻은 두부를 들고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주 당당하게 어머니께 두부를 내밀었다. 누구도 의심하질 않을 거짓말을 생각해가지고 있었으므로. 무사히 심부름을 끝냈다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두부가 왜 이렇게 되었니?”

  어머니의 물음에 나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바람이 불어서 두부가 날아갔어요.”

  어머니는 나의 감쪽같은 거짓말에 얼마나 어이가 없으셨을까.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고 우습다. 내가 둘러 된 바람 핑계는 최고의 은폐였고, 최선이었다. 

  그날 이후로 한동안 일가친척들이 모이는 명절 때마다 나의 바람 핑계는 회자되며 식구들에게 큰 웃음을 안겨주었다. 

  이제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그때가 그립다. 집이 있던 자리는 개발로 빌딩 숲이 되었다. 내가 두부를 사 오다 넘어진 길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왕복 4차선 도로로 변했다. 동해남부선이던 그 철로는 이설 되었고, 철길 모양의 산책로가 단장되어 있다. 

  나는 그때의 내 어머니 나이보다 훨씬 많은 나이로 살고 있다. 느닷없이 어린 시절이 그리울 때는 해운대 간다. 그리고 낯익은 길을 걸으며 바람 핑계를 됐던 어린 나를 만나고 온다.



     

작가의 이전글 공간은 불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