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기자는 아름답다

기자로서 더 나은 ‘공익적 가치’를 생각하며

by 류재민
일본이 우리보다 강하게 된 게 먼저 개명했기 때문이라면 우리도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배움의 길을 터야 해. 아는 것이 힘이야, 자아 용기를 내자.
박완서 <미망> 중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고 합니다. 85세 할머니가 시를 쓰고, 불우한 과거사를 가진 스무살 청년이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용기를 낸 자체만으로도 박수받아 마땅합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삶의 변화와 동시에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인생에 1g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됐지, 손해 보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청와대를 함께 출입했던 <미디어 오늘> 조현호 기자에게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 대학원 석사 논문인데요. ‘절친 선배’로부터 받은 선물에서 고마움과 함께 ‘땀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2년 과정 대학원을 다니면서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까. 그 지난한 여정의 산물은 그저 36페이지 논문에 그치지 않습니다. 국내 일류 대학원을 다닌다는 기대와 설렘, 동시에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뒤처지면 어쩌지, 하는 막연한 불안감도 들었을 겁니다.


주말과 휴일을 반납하고 도곡동 캠퍼스와 대전 본원을 오가며 쏟았을 시간, 등록금과 논문 작성에 필요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들었을 경제적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그는 두 번의 시도 끝에 들어간 대학원에서 배움에 대한 열정만큼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미디어 이용자의 확증편향 연구>라는 논문으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습니다. 인연인가 선배가 최근 출입처를 국회로 옮겨 저와 자주 만납니다.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에게 선물 받은 석사 논문입니다. 제 아내 대학원 논문은 안 읽어봤는데, 이건 꼭 읽어볼게요. ㅎ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과학 용어를 쓰며 가르치는 수업이 생소해 뭐가 뭔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기자들 대부분 문과 출신인데, 과학과 공학을 배우려고 하니 웬만큼 공부해선 따라갈 수 없겠구나 싶을 정도였어요.”


선배는 학위 논문 맨 뒷장 사사(謝辭)에 대학원 공부를 하는 동안 힘과 용기를 준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썼습니다. 쉽지 않은 길에 격려와 응원을 보내 준 가족이야말로 최고의 서포터스였을 겁니다.


선배가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겪은 고생담을 들었을 땐, 게으른 기자로서 부족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나는 한참 멀었구나, 싶었습니다.


요즘 정독하고 있는 <이재명의 기본소득> 저자도 현직 기자입니다. <오마이뉴스> 최경준 기자인데요. 안면은 없습니다. 그 역시 조 선배와 같은 대학원을 다녔습니다. 거기서 배운 지식을 토대로 한 줄 한 줄 고민해서 썼을 걸 짐작하니, 일기 같은 글을 모아 책이랍시고 낸 저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공부하는 기자는 아름답습니다. 자신을 단련하고 연마하며, 탐구하는 열정과 정신을 본받고 싶습니다. 기자는 단순히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현상을 국민과 독자에게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만 다하면 된다고 믿었습니다. 두 기자를 보면서 제 판단은 어리석었음을 알았습니다.

미지의 학문과 분야를 개척해 얻은 지식과 지혜를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기자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서 어떤 정책과 법안을 입안할 때 자문하고 정보를 제공하거나, 방송에 출연하거나 강단에 서서 재능을 기부한다면, 그보다 더한 공익적 가치가 어디 있을까요?


아는 것이 힘이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참에 저도 대학원에 다녀 볼까, 하는 맘에 심장이 쿵쾅댄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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