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국회 기자실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동선이 겹친 기자 전원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았습니다. 저도 반차 중에 천안에서 검사를 받았는데요. 처음에는 대학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검사비용이 10만원 이상 든다고 하지 뭡니까. 3차 의료기관이라 그렇답니다. 다시 택시를 타고 인근 보건소로 갔습니다. 보건소는 시민이라는 ‘쯩’만 있으면 무료로 검사를 해줍니다. 폭염 경보가 내려진 오후, 대기소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땀을 한 바가지는 쏟았을 겁니다.
이윽고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검사소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방역복을 입은 검사원이 긴 면봉 같은 것을 입에 넣어 검체를 채취했습니다.
입 다음은 코였습니다. 검사원이 말했습니다. “뒤로 물러나면 안 돼요.” 찰나의 순간이었습니다. 콧속으로 들어온 면봉이 머리끝까지 닿는 느낌이었습니다. 따가움, 매움, 시큰함이 뒤섞인 찌릿함. 그야말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기분이었습니다.
이 결과를 받기까지 얼마나 맘을 졸였던가. 전쟁터가 따로 없습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만 하루 동안 가족과 떨어져 격리했습니다. 불안과 초조, 공포 속에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침에 나올 거라던 검사 결과는 오후가 다 돼서야 나왔습니다. 다행히 음성이었습니다. 밀접 접촉자가 아니라 바로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살다 살다 제가 코로나 검사를 받을 줄이야. 이걸 브런치에 쓴다고 했더니, 아내가 말립니다. 요즘 코로나 검사받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냐고. 하긴 제 아내는 저보다 몇 달 전에 코로나 검사를 받았거든요.
코로나 검사 후기가 워낙 많아 재미가 없을 거라는 게 아내 말의 요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거라도 안 쓰면 요즘 브런치에 쓸 게 엄서용~. 코로나 때문에 뭘 하지도, 어딜 가기도, 누굴 만나지도 못하니. 글감이 꼭꼭 숨어 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억지로 쓴다고 글이 써지겠습니까. 다만, 글쓰기를 멈추지 않으려면 부단히 소재를 찾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독자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다듬어야 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저 못된 코로나로 막히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집에 왔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평범한 일상을 노상 브런치에 쓰는 것도 재미가 없지요. 일기장에 쓰기도 면구할 정도입니다.
코로나 땜에 뭘 할 수도 없으니까 검사받은 거라도 씁니다. 태어나 처음 경험해 본 일이니까요. 그 첫 경험의 소감은 이렇습니다. “전쟁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여. 6.25만 전쟁이 아니여. 난리가 이런 난리가 읍써. 당최 이 전쟁이 언제 끝날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