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은 ‘관종’이다

자기반성과 성찰, 소통, 구원과 치유의 글쓰기

by 류재민

초등학교 4학년 딸이 논술 학원을 다닙니다. 월요일 저녁마다 ‘인문영재반’이라는 수업을 별도로 듣는데요. 운동을 마치고 픽업을 갔더니 차에 타자마자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9명이 듣는 수업에서 글 잘 쓴 4명을 정해 발표했다는데요. 그중 한 명에 들었다는 겁니다. 원고지 4장만 썼는데, 어떻게 뽑혔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마냥 들떠 있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글은 길게 쓴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야. 내 생각을 얼마나 정확히 독자에게 전달하느냐가 더 중요해. 40장을 써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 원고지 한 장을 써도 분명한 내용과 진심을 담아 쓴 글이 좋은 글이지.”


딸은 고개를 끄덕였고,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소질을 지녔다는 것에 새삼 감사했습니다.


강원국 작가는 글 쓰는 사람을 ‘관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관종’이란 ‘관심종자’의 줄임말인데요.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지나치게 높은 사람을 뜻합니다.

강원국 작가는 글 쓰는 사람은 태생이 '관종'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글 쓰는 사람은 태생이 ‘관종’이다. 이들은 글을 들고 독자 앞에 나선다.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 ‘나는 이것을 알고 있고 이렇게 생각하고 느꼈고 깨달았다’고 얘기한다. 자신을 드러낸다. 이것이 나라고 외치는 것이 글쓰기다. 관심 받기를 싫어한다면 왜 글을 쓰는가. 정치인과 언론인의 글은 말할 것도 없고 문인과 과학자, 철학자, 연예인 할 것 없이 글을 쓰는 이유는 관심을 끌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비겁하다. 「강원국의 글쓰기」 285쪽


저도 ‘관종’에 속한다는 것에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비겁하기 싫어서가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밥 먹고 하는 일이 글쓰기이고, 그걸로 밥을 먹고 사니 ‘관종’입니다. 관종 중에도 '상(上)관종'입니다.


제가 쓰는 기사를 독자가 읽어주지 않으면, 저는 기자로서 존재감이 없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브런치에 쓴 글을 읽어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면, 저는 작가로서 자질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저는 독자들의 관심을 먹고사는 ‘관종’이라는 걸 인정합니다.


일상에서 ‘관종’은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지만, 글쓰기에서 ‘관종’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심을 받고 싶어 글을 쓴다고 하지만, 글쓰기는 여러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글을 씀으로써 스스로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거든요. 독자와 소통은 물론이고, 자기 구원과 치유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외로운가요? 글쓰기로 ‘외롭지 않을 권리’를 누려 보세요.


명필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책상에 앉아 노트를 열든, 노트북을 열든 해보세요. 그럼 이미 글쓰기의 반은 시작한 겁니다. 다 마음먹기에 달린 겁니다. 뭐하세요?
얼른 책상에 앉지 않고요.

글 쓰면서 듣기 좋은 음악 띄워 드립니다. 용량이 커서 링크 주소만 적어둘게요. 영상출처: 글 쓸 때 듣기 좋은 음악ㅣ글쓰기ㅣ라이프레시피 playlist YouTube

*상단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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