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요리사는 손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듭니다. 물건을 만드는 공장장도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형태로 틀을 짭니다. 디자이너 역시 옷 입을 사람의 취향을 먼저 생각합니다.
요리사와 공장장과 디자이너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무슨 맛인지 통 모르겠을 음식을 내놓고, 불량품을 생산하고, 감각에 뒤떨어진 옷을 만든다고 생각해 보세요. 상상만 해도 어처구니가 없겠죠.
기자도 독자 입맛에 맞는 기사를 써야 합니다. 그래야 팔리니까요. 기자 혼자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글을 좋아할 독자가 있을까요? 말도 안 되는 글을 지껄인 신문을 돈 주고 사보고 싶을까요? 절대 없을 겁니다.
그런데도 나약하고 어린 기자들은 오늘도 곳곳에서 ‘팔로우 미(follow me, 나를 따르라)’를 외치며 팔리지도 않을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무슨 개고생인지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써놓고도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는 기자가 있다면, 믿어지나요?
감정이 잔뜩 배어있는 주관적이고 일방적인 글을 ‘기사’랍시고 떡하니 내놓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그렇게 샘솟는지 모를 일입니다. 지면을 개인의 분풀이, 화풀이 용으로 삼는 상식 이하의 기자도 있습니다.
조회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만, 조회수를 토대로 기자가 쓴 기사 중에 어떤 기사에 독자들이 반응했는지 살펴볼 필요는 있습니다. 그래야 독자들의 관심사를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요. 가독성 낮은-출입처 담당자나 볼-보도자료 10개 쓸 바에 독자의 두 눈과 검지 손가락을 사로잡을 '킬러 콘텐츠' 하나 더 찾아 쓰는 게 효과적이고 효율적입니다.
‘고객만족경영(CSM)’은 이미 1980년대부터 기업 이익을 창출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개념이다. 고객만족경영이란 말 그대로 고객을 만족시켜 감동을 줌으로써 제품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유도하고 나아가 브랜드 선호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객을 만족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제품 서비스의 ‘품질’이었다. -조용민 「언바운드」 80쪽
언론사와 기자도 독자의 욕구와 취향에 부합해야 합니다. 독자가 원하는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그 분야에서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정보를 전달해야 합니다. 일종의 ‘전문점’ 방식입니다.
고깃집에서 커피를 팔고, 국숫집에서 초밥을 팔고, 분식집에서 케이크를 판다고 생각해 보세요. 개성 있네,라고 할 순 있겠죠. 하지만 정작 그 가게 들어가 직접 살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고깃집에서는 고기를, 국숫집은 국수를, 분식집에서는 분식만 팔아야겠죠. 대신 고기의 식감을 좀 더 부드럽게, 국수의 면이 보다 감칠맛 나게, ‘김떡순’과 컬래보 할만한 신메뉴를 개발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어떻게? 부단히 공부하고, 연구하고, 도전해서.
무슨 스펙 자랑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전문 용어를 잔뜩 써놓은 기사를 보면 정신이 다 어지럽습니다. 문맥이나 어순이 안 맞는 기사를 읽다 보면, 괜한 시간만 낭비했다는 기분에 감정이 상할 때도 있습니다.(속으로 욕도 하죠.)
정치면 정치, 경제면 경제, 사회면 사회, 문화면 문화 분야에서 전문성을 길러야 합니다. 자기가 맡은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야 그 분야에 취향을 지닌 독자들 입맛을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기업체를 출입하는 기자가 정치 기사를 쓰고, 법조 출입 기자가 연예 기사를 쓴다고 상상해 생각해 보세요. 독자들이 원하는 걸 알기 이전에 기자 스스로 무슨 기사를 써야 할지 난처할 겁니다. 그런데요. 그런 기사가 정말 있습니다. 말해 뭐합니까, 이 나라에는 이름 없는 기자들도 차고 넘치는걸요.
독자를 물고기로 보고 ‘낚시질’이나 하는 기사는 재미도, 감동도 없습니다. 혈압과 울화만 치밀어 오르게 할 뿐이죠. 사회의 공기(公器)라고 하면서 왜 사회의 공해(公害) 취급을 받으려고 할까요. 매를 버는 언론이 아니라, 독자들의 맛집으로 소문난 언론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