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쌀을 가져다 먹으라는 어머니 전화를 받고 시골집으로 향했습니다. 혼자 차를 몰고 가려니 적적해 유튜브에서 노래를 검색했습니다. 김광석 노래를 틀었죠. 음악은 사람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묘한 마력이 있는데요, 김광석 노래는 더 그렇습니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니 옛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올랐습니다. <이등병 편지>를 들을 때는 대학 시절 친구들과 입대 전 노래방에서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났습니다.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그땐 왜 세상 다 산 것처럼 굴었나 싶습니다.
가을걷이를 마친 고향 마을 풍경입니다.
<서른 즈음에>를 들을 땐 죽고 못 살 것처럼 연모했던 이쁜이, 꽃분이가 떠올랐습니다. 가수는 세상에 없는데, 노래는 오래도록 남아 추억을 소환합니다. 눈물을 찔끔 흐르게도, 마음을 싱숭생숭하게도, 가슴을 후벼 파기도 하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게 만듭니다.
조금씩 잊혀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 엔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김광석 <서른 즈음에>
이윽고 시골길 어귀로 들어섰습니다. 가을걷이를 마친 들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쭉정이 하나 남지 않은 빈 논은 황량하기 짝이 없습니다. 봄여름을 치열하게 보낸 만큼 수확의 기쁨을 얻은 계절이었을까요.
어린 시절, 밥을 먹다 남기면 어른들께 야단맞았던 기억이 나는데요. 추수를 마친 논을 보면서 쌀 한 톨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습니다. 올가을은 농부들의 마음이 넉넉하게 채워져 따듯한 겨울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귀하게 받은 쌀을 차에 싣고 집에 돌아와 상경 준비를 했습니다. 지인의 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육십 줄로 접어든 지인은 딸만 둘인데요. 그중 큰딸이 혼례를 올렸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지인 얼굴에는 행복함과 서운함이 교차해 보였습니다.
행복하길 바랍니다.
축하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 차창에 제 딸아이 얼굴이 비쳤습니다. ‘내 딸도 언젠가 결혼이란 걸 하겠지. 그때 내 마음은 어떨까’ 아직 초등학생인데, 별 걱정을 다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딸 둔 아비의 심정이 이런가 봅니다. 김광석 노래 중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라는 노래가 귓가에 맴도는 듯했습니다.
매일같이 오르내리는 KTX는 오늘따라 유난히 승객이 많았습니다. 누구를 만나러 가고, 누구를 만나고 오는진 모르겠는데요. 저처럼 만날 사람이 있고, 볼 일이 있었겠지요. ‘위드 코로나’ 전환 뒤 2주가 지났습니다. 확진자 수가 증가하고, 위중증 환자도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겨울만 계속되는 불안한 시대는 언제 지나갈까요? 빼앗긴 일상에 봄은 언제 올까요?
3년 전, 혼자 떠난 대구 여행길에 김광석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생전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김광석 거리를 걸으며 그의 노래와 그의 초상을 만났습니다. 그의 노래 <거리에서>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거리에 짙은 어둠이 낙엽처럼 쌓이고, 차가운 바람만이 나의 곁은 스치면,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 옷깃을 세워 걸으며 웃음 지으려 하여도 떠나가던 그대의 모습 보일 것 같아 다시 돌아보며 눈물 흘려요.’
단풍이 든 걸 알아차린 순간, 낙엽이 더 많이 쌓인 계절. 김광석 노래에 아침부터 센티했던 하루입니다.
내일은 가족과 함께 독립기념관 단풍나무 숲이라도 걸어볼까 합니다. 낙엽이 더 쌓이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