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복을 입었냐고요?

1년에 한 번 대통령에 질문할 기회, 한국을 알릴 기회, 아버지와의 약속

by 류재민

취재 현장을 다니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이따금 이런 질문을 받는데요. “한복은 왜 입은 겁니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나요?”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든, 아니든 ‘한복 입은 기자’의 모습은 꽤 신기했나 봅니다.


저는 국회와 청와대를 출입하고 있는 15년 차 기자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복을 입어 나름 ‘화제’를 불러일으켰지요.


신년 기자회견은 연 초 대통령과 기자들이 국정 현안을 놓고 질문과 답변을 하는 자리입니다. 기자회견에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 청와대 출입기자는 내외신을 합해 300여 명 남짓. 대략 15명 안팎의 기자가 질문 기회를 얻습니다. 그러니 경쟁이 아주 치열할 수밖에요. 이만하면 제가 왜 한복을 입었는지 아시겠지요?


신년 기자회견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1년 중 가장 큰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TV로 생중계된다는 매력까지 더해지니, 대통령에게 지목받으려는 기자들의 도전은 필사적입니다. 어떤 기자는 대통령의 앞선 답변이 끝나기 무섭게 손을 들기도 하고, 미리부터 손을 들고 있는 기자도 있습니다.


대통령 역시 수많은 기자들이 질문을 하겠다고 한꺼번에 손을 드니 누구를 지목할지 애를 먹는데요. 야구모자, 평창올림픽 마스코트, 기자수첩, 물병 같은 소품을 들거나 저처럼 ‘튀는’ 의상을 입은 기자가 나타난 이유입니다.


제가 대통령에게 질문하기 위한 ‘전략적 자산’으로 한복을 선택한 데는 아버지 조언이 있었습니다. 재작년, 그러니까 2018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첫 신년 기자회견 때 일입니다. 당시 저는 운 좋게 질문 기회를 얻었는데요. 저는 그때 ‘충청권 1등 신문 디트뉴스, 대통령께 질문 있습니다’고 적힌 손 팻말을 들었습니다. 맨 뒷줄에 앉아 있었지만, 금세 알아본 대통령 덕분에 지목을 받았습니다. 저는 대통령에게 수도권 집중화로 인해 지방의 소멸이 가속화하는 현실과 이를 타개하기 위한 해법을 물었습니다.


질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마자 휴대폰 진동이 한참 동안 이어졌습니다. TV를 보던 가족을 비롯해 친구와 동료, 연락이 뜸했던 지인들까지 연락을 해 온 건데요. 회견이 모두 끝나서야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확인했습니다. 문자 메시지는 수백 통이었고, 부재중 전화도 많이 와 있었습니다. 기자 생활을 한 이래로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전율과 희열을 동시에 느꼈다고 할까요.


며칠 뒤 설 명절이었습니다. 고향집을 찾았을 때 아버지께서 “내년에는 이렇게 해보라”라고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청와대 기자들은 왜 다들 양복만 입는지 모르겠다. 외신 기자들도 있으니 청와대인지, 백악관인지 분간이 안 간다. 정초이기도 하고, 대한민국 청와대라는 걸 알리려면 한복을 입어보면 어떻겠느냐.” 저는 맞장구쳤습니다. “이야, 그거 좋네요.” 아버진 충청도 사투리로 “근디 말여, 그거 입을 순 있겄어?” 하셨습니다. 보는 이들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었습니다. 솔직히 자신은 없었는데요. 그렇다고 아버지 제안을 흘려버리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한번 해 보죠”라고 화답했습니다.


그해 가을, 추석을 며칠 앞두고 아버지께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이듬해 흰 두루마기와 푸른색 도포를 두른 한복을 입고 신년 기자회견에 참석했습니다. 질문 기회는 얻지 못했지만, 후회는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한 약속을 지켰으니까요. 아버지 역시 하늘에서 제 모습을 보셨을 테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올해도 한복을 입고 부채까지 흔들었지만 질문 기회는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포기는 하지 않으려고요. 출입처가 바뀌지 않는다면, 내년에도 한복을 입을 생각입니다. 청와대 출입기자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기자회견의 새로운 의복 문화를 만들어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