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있는데 국민은 보호받지 못하는 법

‘누더기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정 사유서

by 류재민

지난 11일 광주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 붕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6명이 실종됐는데요. 사고 발생 이틀 만인 오늘 실종자 한 명이 발견됐습니다. 아직 생사 확인은 되지 않고 있는데요. 모두 살아있기를 기도합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고도 ‘인재’ 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는데요. 작년 6월 일어난 광주 건물 붕괴 사고와 같은 업체가 공사를 맡아 비판이 거세다고 합니다. 그때처럼 이번에도 안전관리가 제대로 안 된 것 아니냐는 얘기입니다.


13일 붕괴 사고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을 하던 업체 관계자가 사고 직전 상황이 찍힌 총 2분 10초 가량의 동영상을 언론에 공개했다.
해당 영상은 지난 11일 신축 공사장 건축물 외벽 등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기 10여분 전인 오후 3시 35분 전후 상황이 찍혀있다.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부는 날씨에 외국인 작업자들이 39층 바닥에 설치된 거푸집에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면이 담겨있다.
영상 속에서는 콘크리트 무게가 더해지자 거푸집이 '두둑' 하는 소리를 내며 거푸집을 뚫고 건물 내부로 흘러 들어가는 모습도 포착됐다. 영상이 공개되자 지역민들과 실종자 가족들은 "이상 징후 직후 빠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2022년 1월 13일 《무등일보》 <‘거푸집 두둑’ 붕괴 직전 영상 공개···부실 겹친 인재 ‘무게’> 기사

출처: 무등일보

우리는 언제까지 끔찍하고, 참담하고, 어처구니없는 광경과 소식을 접해야 하는 걸까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오는 27일부터 적용됩니다. 법은 지난해 1월 제정했는데, 1년간 시행을 유예한 탓입니다. 그래서 이번 사고는 이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설령 적용을 받는다고 해도 원청업체는 처벌 수위가 높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두 사고 모두 HDC 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하는 현대아이파크 건설 공사 과정에서 발생했다. 17명이 죽거나 다친 학동 참사의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했던 사람은 모두 9명이었다.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이들 9명 가운데 현대산업개발 현장소장을 제외한 나머지 8명은 모두 하도급업체 관리자나 재하도급업체 대표 등이었다. 원청인 현대산업개발 측의 법적 책임을 묻지 못한 셈이다.
2022년 1월 12일 《연합뉴스》 <중대재해법 27일 시행…‘아파트 외벽 붕괴’ HDC 또 책임 피하나> 중.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용자의 책임을 묻는 법입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고(故) 김용균 씨 사고 이후에 본격화하면서 법 제정으로까지 이어지긴 했는데요. 법제화 과정을 거치면서 ‘누더기 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사이 안타까운 희생은 계속되고, 법 개정을 요구하는 노동계의 목소리는 한겨울 허공만 맴돌 따름입니다.


국회는 같은 날 ‘학동 참사’를 방지하기 위한 건축물 관리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철거 공사 현장 점검을 의무화하는 등 학동 참사와 같은 비극을 방지하려고 했지만, 같은 날 붕괴 사고가 발생하며 법률안 취지가 무색하게 됐다. 앞의 《연합뉴스》기사 중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2월 18일 청와대에서 고(故) 김용균 씨 부모와 면담에 앞서 김 씨 어머니인 김미숙 씨를 위로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 제공.

이 땅에는 법은 있는데 ‘국민은 보호받지 못하는 법’이 너무나 많습니다. 유명무실한 법치국가에서 국민의 소중한 목숨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취급을 받습니다. 이 망국병은 언제나 치유될까요?

노동현장의 참담함을 알지 못하는 정부 관료들은 ‘탁상행정’을 대물림하고 있습니다. 국회는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법을 놓고 아웅다웅하며 흥정합니다. 그러는 동안 국가안전 시스템은 좌표를 잃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기업은 자기 주머니로 들어오는 돈은 목숨보다 중하게 여기면서도, 현장 근로자들은 밥을 먹는지, 컵라면을 먹는지 관심조차 없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치경제학’.
오늘의 브런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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