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말이 말도 안 되게 죽었다

말 같지도 않은 학대와 죽음에 대하여

by 류재민

이번에는 말[馬]이 죽었습니다. 드라마 촬영에 투입됐다 고꾸라지는 사고가 났는데요. 부상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해당 드라마는 KBS가 5년 만에 내놓은 정통 사극《태종 이방원》입니다. 이 드라마는 저도 애청하고 있는데요. 말이 사고를 당한 경위를 뉴스로 접한 뒤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말 같지도 않은 말의 죽음 소식에 말문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앞서 동물자유연대는 '드라마 촬영을 위해 강제로 넘어지고 쓰러지는 말, 그들의 안전과 복지가 위태롭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태종 이방원' 7회 낙마 장면에 문제를 제기했다.

단체는 "말을 쓰러뜨리는 장면을 촬영할 때 말의 다리에 와이어를 묶어 강제로 넘어뜨린 사실을 확인했다"며 "말은 몸에 큰 무리가 갈 정도로 심하게 고꾸라지는 위험한 방식으로 촬영되었다"고 지적했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KBS 홈페이지에 해명을 요구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컴퓨터 그래픽이나 더미를 이용해 촬영하지 않고, 실제 동물을 이용해 촬영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데 의견이 모이며 논란이 일었다. 《아시아경제》2022년 1월 20일 <'태종 이방원' 고꾸라진 말, 결국 사망..KBS "사고 책임 통감"> 보도 중
KBS1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말이 바닥 쪽으로 심하게 넘어져 동물 학대 의혹이 불거진 장면. 방송 화면 캡처. <출처: 아시아경제>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 위험한 장면을 CG도 안 쓰고 라이브로 찍었을까요? 더구나 달리는 말을, 그것도 경사면에서 다리를 묶어 넘어뜨리다니요. 넘어뜨린 사람은 자기도 한 번 똑같이 당해봤으면 좋겠네요. 죽은 말은 얼마나 큰 고통에 힘들어했을까요.


제작진은 “이번 사고를 통해 낙마 촬영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다시는 이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다른 방식의 촬영과 표현 방법을 찾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는데요. 재발 방지를 약속한 건 다행이지만, 후진적인 촬영 방법은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배우들이야 연기를 하고 싶어 촬영에 임하겠지만, 말들도 그럴까요? 과연 자발적으로 촬영장에 왔을까요?끌려간 건 아닐까요?


며칠 전, 동물 학대와 관련한 글을 썼는데요. 반려동물에 이어 말까지, 동물의 수난 시대는 언제까지 이어져야 할까요? 조속히 동물보호법 개정을 통해 가해(학대) 자에 대한 처벌 강화가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함부로 대하고, 사람의 필요에 흥미를 위한 수단으로 쓰다 버리면 된다는 안일한 사고방식도 뜯어고쳐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백날 재발 방지를 약속해도 학대와 그로 인한 동물들의 죽음은 계속될지 모릅니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또다시 고꾸라질 테니까요.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고, 제구실 못 하는 법은 맞게 고쳐 써야 합니다. 있는 법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국회의원들은 날마다 이 법, 저 법 만들기만 바쁩니다. 그사이 힘없고 약한 동물과 사회적 약자는 초법적인 현실에 스러져가는데 말이죠.


지난달 6일 동물권 단체 ‘디엑스이코리아’가 ‘더현대 서울’ 벽면에 동물 권리장전이 쓰인 현수막을 내걸고 기습 시위를 벌였습니다. 디엑스이코리아 혜린

제가 말띠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요. 동물도 인간이나 다를 바 없는 생물입니다. 보호받을 권리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다음은 동물권 단체 ‘디엑스이코리아(Direct Action Everywhere – Korea,)’가 선언한 <동물 권리장전>입니다.

·고통과 착취의 상황에서 구조될 권리
·보호받는 집, 서식지 또는 생태계를 가질 권리
·법정에서 권익이 대변되고, 법에 의해 보호받을 권리
·인간에게 착취, 학대, 살해당하지 않을 권리
·소유되지 않고 자유로워질 권리
-또는 그들의 권익을 위해 행동하는 보호자가 있을 권리

하긴, 사고 발생 열흘이 넘었는데 실종자를 찾지 못하고 있는 광주 아파트 붕괴 현장의 참상을 떠올리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공정하고 정당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없는 이만 “서럽다”라고 말하다 불쌍하게 가는 사회입니다.

*상단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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