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악산 겨울 숲길을 걸으며

나를 들여다보고 돌아보다

by 류재민

운악산(雲岳山, 935m)은 경기 가평군 조종면과 포천시 화현면의 경계를 이루며 남북으로 솟아 있습니다. 화악산, 관악산, 감악산, 송악산과 함께 ‘경기 5악’에 속합니다. 산 이름에 ‘악’ 자가 들어가면 산세가 험해 오르기 힘들다고 하는데요. 정말 산 아래에서 위를 쳐다만 봐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더군요.


주봉인 망경대를 중심으로 봉우리마다 깎아지른 절벽들이 우뚝우뚝 치솟고, 주변으론 뾰족봉·편편봉·완만봉의 산봉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현등산이라고도 불리는 운악산은 또 시원스런 계곡과 폭포, 하늘을 가리는 활엽수와 단풍나무들이 온 산을 뒤덮어 절경을 이루니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명산은 사철 풍광이 뛰어난 게 특징이지만, 운악산은 특히 가을 단풍이 장관이고, 봄이면 산목련과 진달래가 흐드러져 꽃바다를 이룬다. 현등사 (답사여행의 길잡이 9-경기북부와 북한강, 초판 1997., 13쇄 2012., 한국문화유산답사회, 김효형, 김희균, 김성철, 유홍준, 문현숙, 정용기)

운악산에는 오래된 사찰인 현등사(懸燈寺)가 있습니다. 신라 법흥왕 27년(540) 인도에서 불법(佛法)을 전하기 위해 온 승려 마라가미(摩羅訶彌)를 위해 창건했다고 합니다. 현등사로 올라가는 길에는 ‘백년 폭포’가 장관입니다.


백년 폭포는 운악산이 품은 20m 길이의 폭포이다. 45도 경사 바위 위로 흐르는 폭포가 백년을 두고 변함없이 흐른다고 하여 ‘백년 폭포’라고 한다. 백년은 단순히 숫자 100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오랜 세월을 뜻한다. 구한말 민영환이 자주 찾아와 나라 걱정에 한숨을 지었다는 이 백년 폭포는 무우폭포와 함께 운악산의 대표적인 폭포다. 안내문 중.


다음 달 대선, 곧이어 지방선거 취재로 짬을 내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기분 전환도 하고, 생각도 정리하려 바람을 쐬고 왔습니다. 이틀 모두 날씨가 춥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가평군 하면 하관리 주차장에 차를 대고, 폭포를 따라 산을 거닐었습니다. (산책 같은 등산이었습니다 ^^;;)


폭포는 꽁꽁 얼어붙어 물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등산객도, 지나는 차도 없어 그야말로 ‘적막강산’이었는데요. 덕분에 숲이 주는 맑은 공기와 고요함을 만끽하며 걸었습니다. 굳이 소음이라면,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서걱거리는 나뭇잎 소리뿐이었죠.


계곡의 무성한 낙엽, 굽이굽이마다 쌓인 눈, 숱한 사람들이 쌓아 올렸을 돌탑, 그 길을 따라 걷는 나. 가을 단풍과 봄꽃 흐드러진 풍경은 아니어도 정취와 운치는 그만이었습니다. 나뭇잎과 줄기와 뿌리가 들려주는 숲 이야기를 들으며 숲과 교감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만은 미움과 시기, 질투, 욕심 다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오래 걸렸어도 잘 왔다, 싶었습니다.


운악산 겨울 숲길을 걷고 왔습니다.

걸으며 한 생각인데요. 아등바등 사느라 스스로 돌보고 챙기지 못하는 삶이 얼마나 공허한가. 천천히 사색하면서 걷는 겨울 숲길은 지나가는 새 한 마리 없어도 전혀 쓸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삶의 든든한 기운과 활력을 얻은 느낌입니다. 가끔은 이런 공간적 일탈과 여유를 즐겨야겠습니다. 입산 때는 무거웠던 발걸음이 하산 때는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산 이름으로 유명해진 ‘유명산(有明山)’을 들렀는데요. 휴양림 입구에 산의 랜드마크처럼 보이는 얼음탑이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그 옆을 지나오니 신갈나무와 야광나무가 합쳐진 연리목 한 그루가 있었는데요. 이름하여 ‘사랑나무(혼인목)’입니다.

같은 종류 또는 다른 종류의 나무 두 그루가 자라면서 좁은 공간에서 서로 자리를 내여주기도 하고 때론 뻗어나기도 하면서 한쌍이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나무를 일컬어 혼인목이라고 한다. -사랑나무(혼인목) 안내 문구
왼쪽부터 운악산 백년폭포, 유명산 얼음탑, 사랑나무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 스님이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되고 난 뒤 해인사에서 행한 설법에서 비롯한 말인데요. 세상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구별과 경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도 없고, 귀함과 천함도 없으며,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경구입니다.


한없이 약한 인간도 악마가 갖지 못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가족, 친구, 사람에 대한 마음이다. 오롯이 인간으로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다. 악에 무릎 꿇지도, 용서하지도 않겠다는 마음이다. 그리하여, 인간이란 한계는 오히려 구원이 된다. 권석천 『사람에 대한 예의』 36쪽.

한 달 뒤 우리는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합니다. 여야 후보들은 ‘최후의 1인’이 되려고 오늘도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경쟁 없는 승부란 없습니다. 다만, 네거티브 일색의 선거운동은 어느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선거 이후에도 상처만 남기 때문입니다. 부디 지도자의 도량과 산처럼 너른 품을 갖기 바랍니다. 충전하고 왔으니, 에너지 효율 모드로 전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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