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시행 보름 만에 9명이 죽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이 법은 왜 만든 걸까요?

by 류재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숨지거나 크게 다쳤을 경우 사업주에게 법적 책임을 강화하도록 한 법. 지난해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올해 1월 27일 첫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중대산업재해는 ▲ 사망자 1명 이상 발생 ▲ 같은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발생 ▲ 같은 유해 요인의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 등 요건 중 하나 이상 해당하는 산업재해를 말합니다.


법 시행 이후 불과 보름 만에 대형 인명 사고 3건이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1년의 준비 기간이 있었음에도 현장은 여전히 바뀐 게 없습니다. 1호는 1월 29일 경기도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토사 붕괴로 노동자 3명이 목숨을 잃은 사고입니다. 법 시행 이틀 만입니다.


2호는 그로부터 열흘 만에 벌어졌습니다. 지난 8일 경기도 성남시 제2 판교 테크노밸리 건설 현장에서 승강기 설치 도중 노동자 2명이 추락해 숨졌습니다. 또 사흘 뒤인 지난 11일에는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여천 NCC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나 노동자 4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습니다.


YTN 2022년 2월 14일 뉴스 화면 갈무리.

뿐인가요. 지난달 11일 광주의 한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작업 중 건물이 무너져 하청 노동자 6명이 숨졌습니다. 시신이 모두 수습되기까지는 29일이 걸렸는데요. 법 시행 전이라 처벌 대상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중대 재해를 일으킨 기업이라도 법의 온전한 처벌을 받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법은 있으나, 해석이 애매해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보름 만에 1, 2, 3호 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압수수색과 현장 감식을 통해 중대재해법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지만, 처벌이 가능할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법에 규정된 안전·보건 확보 의무에서 안전 매뉴얼이나 안전 관리 조직 관련 기준이 모호해 법정 다툼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YTN 2022년 2월 14일 <불과 보름 만에 '중대재해법' 3호 수사…"바뀐 것 없어"> 보도 중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법 공포 뒤 2년 동안 법 적용을 유예받아 2024년부터 적용됩니다. YTN 뉴스 화면 갈무리.

이 얼마나 답답한 소리입니까. 국회는 있으나 마나 한 법을 왜 만든 걸까요? 노동계와 들끓는 국민 여론에 등 떠밀려 '누더기 법'으로 시늉만 낸 건가요? 법 같지도 않은 법에 오늘도 현장에서는 힘없는 노동자들이 소리 없이 스러져 가고 있습니다.


20대 청년 김용균이 어두컴컴한 발전소 작업장에서 혼자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졌습니다. 그의 모친은 재단을 만들고, 국회 앞에서 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까지 했습니다. 그 수고와 투쟁의 결과가 이것밖에 안 된다니.


그마저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고요. 50인 미만 사업장은 법 공포 뒤 2년 동안 법 적용을 유예받아 2024년부터 적용됩니다. 그런데 재계에서는 기업에 과도한 책임을 지게 하는 법이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기업 활동이 위축될 거란 이유 때문인데요.


그래서 여전히 많은 기업이 안전 대책을 준비하고 고민하기보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처벌을 피할 궁리나 하는 모양입니다. 사장님이나 회장님의 아들딸이 현장에서 사고를 당해도 그럴 수 있을까요? 공장의 기계를 돌리고, 기업을 먹여 살리는 건 사람이지, 기계가 아닙니다. 사람을 기계로 보는 경영철학과 인식의 변화가 없는 한, 어떤 법도 노동자를 지켜주지 못할 겁니다. 그들의 자녀는 정규직이니 그런 걱정 없다고요? 괜찮다고요?


비정규직도 ‘사람’입니다. 안전한 작업 환경에서 죽지 않고 일할 권리가 있는 근로자입니다. 그들 역시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삶을 사는 우리의 형제이고, 친구며, 아버지이자 이웃입니다.


2020년 국내총생산(GDP) 1조 5868억 달러,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 글로벌 수출 6위·수입 9위의 ‘무역 강국’. 글로벌 사회에서 우리나라를 수식하는 지표입니다. 위기에 강한 대한민국은 위기에 몰린 노동자들의 뼈와 살을 갈아 넣어 만든 상처뿐인 영광 아닐까요?


2022년 2월 10일 jtbc 뉴스 갈무리.

지난 10일 고(故) 김용균 사망 사건 첫 판결이 나왔습니다. 사고 발생 3년여 만입니다. 원청업체 대표는 ‘무죄’, 나머지도 ‘집행유예’와 ‘벌금형’에 그쳤습니다. 김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이렇게 절규했습니다.


“가해자들은 다 빠져나가고 집행유예로 다 떨어지고 진짜 감옥 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전에도 무수히 사람이 죽었습니다.”

*상단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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