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가 대전을 떠날 수도 있다고요?

꼴등만 한다고 해도 그렇지, 정치가 그러는 거 아닙니다

by 류재민

충청도를 연고로 한 프로야구단 한화 치킨스 이글스가 대전을 떠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갑자기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고요? 이글스 마스코트인 ‘독수리’는 대부분 먹이를 따라 이동하는 철새이고, 일부 종은 ‘텃새’라는데요. 정작 정치권이 이글스에 ‘텃세’를 부리는 형국이기 때문입니다.


한화의 ‘탈(脫) 대전 설’은 최근 KBO(한국야구위원회) 수장이 된 허구연 총재 입에서 나왔습니다. 허구연 총재는 지난 29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지자체에서 구단에 대해 갑질을 하고 소중함을 모르면 구단은 떠나야 한다”라고 ‘센 발언’을 내놨습니다.


신임 총재가, 그것도 취임 첫날부터 ‘경고장’을 날린 이유는 뭘까요? 다음 기사를 보시죠.

대전을 연고지로 한 한화 이글스는 대전시와 함께 새 야구장을 건설 중이다. 계획대로라면 오는 2025년 신축 야구장에서 시즌을 맞아야 한다. 하지만 최근 야구장 관련 체육시설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당초 계획은 야구장 인근에 있는 한밭야구장을 철거하고 신축 야구장을 포함한 '베이스볼 드림파크'를 조성하는 것인데, 이를 두고 대부분의 대전시장 예비후보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 2022년 3월 29일 《뉴스 1》<허구연 총재 “지자체가 구단에 갑질하면, 팀이 떠날 수 있음을 보여줄 것”> 중

정치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돕는 겁니다. ‘빙그레 이글스’ 어린이 회원 출신인 저 같은 '보살 팬'은 화가 나니까요.

허 총재는 “신축 야구장 문제를 걸고넘어지는 건 정치에 스포츠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야구장 건립 등과 같은 인프라 개선이 안 된다면, 총재 권한을 다 쓸 것”이라며 한화 연고지 이전 가능성을 언급한 겁니다.


허 총재 말마따나 ‘야구’라는 스포츠를 정치판에 끼어 들이려는 발상부터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전 신축 야구장은 허태정 시장의 공약이기도 했고, 3년 전 사회적 합의를 이룬 사안이기도 합니다. 이미 다 끝난 얘기를 선거철이 다가왔다고 해서 정치 쟁점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깁니다.


정치권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면, 대전시 행정과 구단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래서야 어디 야구 한 번 맘 편히 보러 갈 수 있겠습니까. 팬들에 대한 예의도 아닙니다. ‘빙그레 이글스’ 어린이 회원 출신인 저 같은 '찐찐 팬'은 분노가 치미는 대목입니다.


오늘 서울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 허태정 시장이 다녀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대선 기간에 했던 대전지역 공약을 국정 과제에 반영하기 위해선데요. 안철수 인수위원장도 만나고, 김병준 지역균형발전특위 위원장도 만났습니다. 인수위 고위급에게 ‘읍소’ 하러 온 건데요. 고위급이라고 해야 지금 당장 뭘 결정할 단계는 아닙니다. 아직 대통령 취임식도 안 한 상태니까요.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발품을 팔러 온 거죠.


저는 속으로 ‘마침 잘 됐다’라며 허 시장에게 야구장 논란에 입장을 물었습니다. 허 시장은 허심탄회하게 주관을 밝혔습니다. 그는 한 마디로 “이미 3~4년 전에 논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에 반대하는 건 옳지 않다”라고 했습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구장 논란이 정치쟁점으로 떠오른 것에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 셈입니다. 동시에 지난 지방선거 때 했던 야구장 신축 공약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허 시장과 인터뷰를 ‘단독’으로 쓰면서 하루 밥값을 했습니다. [단독] 허태정 “사회적 합의에 반대, 옳지 않아” 야구장 논란 정면승부


여야를 떠나 정치인들도 ‘밥값’을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방을 살찌우겠다고 나선 후보들은 더 그렇습니다. 정치는 정치인이 해야 하는 것처럼, 프로 경기는 프로에게 맡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치인이 손을 대기 시작하면, 멀쩡한 것도 망가지고, 고장 나기 십상입니다.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겁니다. 암만 한화가 매년 꼴등만 한다고 해도 그렇지, 이러는 거 아닙니다.


베이스볼 드림파크 건립을 두고 지역사회에서 오랜 기간 논란과 공방이 있었고, 지금 진행 중인 행정절차는 ‘공론화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새 야구장을 어디에 건설할 것인지 입지 경쟁이 치열했고, 진통 끝에 현 한밭운동장을 철거한 후 새로 건설하는 것으로 논란이 일단락된 바 있다. 허구연 총재의 말처럼 ‘정치가 스포츠를 흔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엄밀히 말해 ‘시민 없는 정치가 행정을 흔들고 있는' 현실이다. 2022년 3월 30일 《디트뉴스24》 <대전의 정치보다 ‘허구연의 말’에 힘 실리는 이유> 중

한화 이글스 홈페이지에도 팬들의 분노 글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한화 이글스 홈 게시판 캡처.

이틀 뒤인 4월 2일. 2022 시즌 프로야구가 개막합니다. 한화 이글스는 잠실에서 두산 베어스와 시즌 첫 경기를 갖습니다. 두산 베어스는 전신 OB 베어스 시절 대전이 연고지였습니다. OB가 대전을 떠났던 것처럼, 한화가 대전을 떠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이글스 ‘보살 팬’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 더 바람이 있다면, 올해는 제발~ 꼴찌 탈출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구단이 한화가 아니랄까 봐 ‘생명보험(한화 경기 오래 보면 '암' 걸릴 수 있다는 설이 있음)’ 들어야 할 판이유.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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