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노란색 봄

세월호 8주기: 아픈 기억이 추억이 되는 날까지

by 류재민

미국의 시인 T.S 앨리엇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는 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을까요? 개나리도 피고, 진달래도 피고, 벚꽃과 백목련이 화사한 봄이 얼마나 축복의 계절인데요. 작가에게는 봄보다 겨울이 더 좋았던 모양입니다. 하얀 눈으로 덮인 세상, 그 고요함을 깨고 찾아든 봄의 웅성거림과 욕망의 시작을 몹시 두려워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그만큼 봄이라는 계절이 ‘잔인할 만큼 좋다’라는 역설(逆說) 일 수도 있고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시는 작가의 의도가 어떻든 읽는 이의 다양한 관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앨리엇의 <황무지>보다 이해인 수녀의 ‘눈이 짓무르도록 이 봄을 느끼며 두 발 부르트도록 꽃길 걸어볼랍니다’고 한 <4월의 시>가 더 좋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계절의 변화나 특정한 시기가 되면, 떠오르는 사람과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 추억이 ‘좋은 기억’만은 아닐 겁니다. 가족의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8년 전 ‘금쪽같은 내 새끼’를 잃은 세월호 부모들도 해마다 이맘때면 가슴이 미어질 줄 압니다. 그들이야말로 매년 돌아오는 4월이 잔인하고, 눈이 짓무르겠죠.

세월호 참사는 지난 2014년 4월 16일 발생했습니다.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사고인데요. 탑승객 476명 가운데 304명(미수습 5명 포함)이 숨졌습니다.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났던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 가운데 250명과 교사 11명이 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8번째 봄이 찾아왔습니다.

4·16 재단은 4월 한 달 동안 온라인 추모공간 ‘여덟 번째 봄’을 운영합니다. 누구나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글이나 사진을 남길 수 있습니다.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습니다.


매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 주기에 맞춰 진행되는 기억식은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과 시민들의 깊은 슬픔을 위로하고, 공동체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행사다. 8주기 기억식은 국무총리 등의 추도사, 기억영상 상영, 생존 학생 약속의 편지 낭독, 4·16합창단 및 단원고 재학생 기억 합창 등이 진행된다. 16일 오전 11시에는 인천가족공원에 위치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옆 광장에서 ‘세월호참사 일반인 희생자 8주기 추모식’도 진행한다. 2022년 4월 8일 《한겨레》 <다시 노란 물결 봄…곳곳서 세월호 참사 8주기 행사> 중

416 재단이 운영 중인 세월호 8주기 온라인 추모공간 갈무리.

세월호 참사 8주기를 맞아 경기도 안산과 전남 진도 등에서 추모행사가 이어집니다. 별이 된 아이들을 추모하고, 부모와 유가족 아픔을 조금이라나 위로하려는 공동체의 치유 노력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월호 사고 당시 국가는 어땠습니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은 사태 파악은 고사하고, 사후 대응마저 무책임했습니다. 아니, 무능했습니다. 개나리, 진달래 같은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엄마, 아빠를 찾으며 허우적거릴 때 대통령은 무얼 했습니까. 국정을 농단한 죄로 헌정사 최초로 탄핵당하고, 구속까지 된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그는 지난 연말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습니다. 살아있으니, 세상의 빛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올해 4월은 찬란한 봄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미안하다’, ‘죄송하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변호했던 이의 정치적 행로에는 꽃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 씨가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한 유영하 변호사에 대해 8일 “저를 대신해 꿈을 이뤄줄 사람”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지난해 12월 사면돼 지난달부터 대구 자택에 머물고 있는 박씨가 정치 메시지를 밝힌 건 5년1개월 만이다. 박씨가 사면 3개월여 만에 대국민 사과 없이 공개적인 정치 활동에 나선 것을 두고 비판이 제기된다. 2022년 4월 10일 《경향신문》 <사면 후 사과 한마디 없이…박근혜 ‘정치 속으로’> 중
저도 온라인 추모공간에 짧은 메시지 하나 올렸습니다.

세월호 선체는 물 밖으로 나왔지만, 그 안에 타고 있던 아이들은 여전히 바닷속에서 절규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진상 규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차마 보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박승렬 416 연대 공동대표는 지난 9일 세월호 8주기 국민대회에서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8월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그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해 사과하며 진상 규명과 새로운 생명 존중받는 세상을 만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엇이 바뀌고 어떤 성과가 있었나? 해경 지휘부는 처벌받지 않았다. 가족들을 사찰하고 탄압한 국정원과 기무사도 책임을 면했다.” 오마이뉴스 <세월호 8주기 국민대회 “밝혀진 게 있어야 멈추죠”> 기사 인용


그분들께 국가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지겹다, 그만 좀 해라”가 아닙니다. “힘들죠? 힘내세요”라는 ‘위로’와 ‘공감’ 일 겁니다. 우리는 타인의 문제에 너무 무관심합니다. 세상에 나와 무관한 일은 없습니다. 언제쯤이면 세월호 아이들과 엄마 아빠에게 4월이 아픈 기억이 아닌, 추억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돌려 말하지 마라
온 사회가 세월호였다
오늘 우리 모두의 삶이 세월호다
자본과 그 권력은 이미
우리들의 모든 삶에서 평형수를 덜어냈다
사회 전체적으로 정규적 일자리를 덜어내고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성을 주입했다
그렇게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노동자세월호에 태워진 이들이 900만명이다
사회의 모든 곳에서
‘안전’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어야 할 곳들을 덜어내고
그곳에 ‘무한 이윤’이라는 탐욕을 채워 넣었다
이런 자본의 재해 속에서
오늘도 하루 일곱 명씩이 산재라는 이름으로
착실히 침몰하고 있다
생계비관이라는 이름으로
그간 수많은 노동자민중들이 알아서 좌초해가야 했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이들이 지하선실에 가두어진
이 참혹한 세월의 너른 갑판 위에서
자본만이 무한히 안전하고 배부른 세상이었다.
그들의 안전만을 위한 구조변경은
언제나 법으로 보장되었다
무한한 자본의 안전을 위해
정리해고 비정규직화가 법제화되었다
돈이 되지 않는 모든 안전의 업무가
평화의 업무가 평등의 업무가 외주화되었다
경영상의 위기 시 선장인 자본가들의 탈출은 언제나 합법이었고
함께 살자는 모든 노동자들의 구조신호는
외면당했고 불법으로 매도되고 탄압당했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한 자본의 이동은 언제나 자유로운 합법이었고
위험은 아래로 아래로만 전가되었다
그런 자본의 무한한 축적을 위해
세상 전체가 기울고 있고 침몰해가고 있다
그 잔혹한 생존의 난바다 속에서
사람들의 생목숨이 수장당했다
그런데도 가만히 있어라고 한다
돌려 말하지 마라
이 구조 전체가 단죄받아야 한다
사회 전체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이 처참한 세월호에서 다시 그들만 탈출하려는
이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이 위험한 세월호의
선장으로 기관장으로 갑판원으로 조타수로 나서야 한다
이 시대의 마지막 남은 평형수로 에어포켓으로
다이빙벨로 긴급히 나서야 한다
이 세월호의 항로를 바꾸어야 한다
이 자본의 항로를 바꾸어야 한다 -송경동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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