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누군가에 부탁이나 도움을 요청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반대로 상대방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어떻게 하세요? 가능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죠. 하지만 들어주기 어려운 청이라면 참 곤란할 겁니다. 어떻게 거절해야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지 않을까 고민도 하고요.
며칠 전, 지인에게 급히 부탁할 일이 생겨 연락한 적이 있는데요. 거절하는 태도에 기분이 상했습니다. 정나미가 뚝 떨어지게 대답하는 게 아니겠어요. 모르는 사이라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요. 아는 사이에 너무 야멸차게 대응하는 것처럼 느껴져 맘이 상했습니다. 딴에는 제 부탁이 부담일 수 있겠다 싶어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했는데 말입니다.
‘편하게 생각하자’ 이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한동안 서운함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동안 해준 건 생각도 안 하는군, 하며 성난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상대방의 기분이나 상태가 안 좋았을 수도 있었겠다. 짜증 나거나 화 나는 일이 생긴 상황에서 제가 부탁 전화를 걸었다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더라고요.
거기에 생각이 이르자 저 자신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속물’ 근성도 밑천을 드러낸 것 같고요. 제 속이 참 좁았다는 반성을 했습니다. 순간, 그분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저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저나 상대방이나 그럴 의도가 아니었을 텐데 말이죠. 이렇게 말 한마디는 서로의 감정과 나아가 ‘인간관계’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무슨 부탁을 청할 때는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고, 거절할 때도 미안함과 함께 이해를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늘 부탁만 하는 사람처럼 몰아붙이면 곤란합니다. 부탁을 들어주지도 않을 거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반대로 부탁하는 상대방을 향해 '그런 것 하나 못 들어주냐'는 식으로 무례하게 굴면 안 됩니다. 물품보관소에 맡겨 놓은 물건 찾으러 온 게 아니니까요.
순간적인 감정 조절을 못해 소중한 사람과 인연이 끊어지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그것만큼 후회스러운 일은 없을 테니까요. 가시 돋친 말보다 너른 품과 지혜로움을 배워야겠습니다.
마음의 항아리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차근차근 생각해 본다. 불안과 자책과 분노와 눈물과 욕심도 담겨 있지만, 자애와 절제와 만족과 웃음도 담겨 있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제의 그림자와 내일의 기대도 담겨 있다. 마음의 항아리를 들여다보는 봄날이다. 문태준 산문집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 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