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선 사람들 이야기

지능의 경계가 삶의 경계가 되지 않기를

by 류재민

‘경계인’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경계심이 많은 사람이냐고요? 아니면, 어떤 경계(境界)에 있는 사람이냐고요? 후자에 가깝습니다. 그럼 ‘경계인’은 누구를 일컫는 걸까요? 어느 한 집단이나 무리에 끼거나 적응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혹시 ‘경계성 지능’이라는 말은 들어보셨나요? 저도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 생소했는데요. 경계선 지능이란, 지적장애와 평균의 사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경계성 지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는데요. 이들은 오래전부터 우리 주변에서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텐데 저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언어치료사라서 발달 장애아와 그 부모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는 접하고 있는데요. 경계성 지능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들은 ‘장애’라고 구분할 순 없습니다. ‘조금 늦은’ 사람들일 뿐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잖아요.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깨치는 아이도 있지만, 입학 후 1년이 지나도 ‘기역니은’을 모르는 아이도 있습니다.


구구단을 초등학교 2학년에 떼는 아이도 있고, 3학년에 떼는 아이도 있죠. 그렇다고 그 아이들을 ‘저능아’나 ‘장애아’라고 하진 않죠. 경계성 지능 역시 그런 맥락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아이나 성인에게 ‘덜 떨어졌네’라고 조롱하거나 ‘왕따’ 취급하는 건 인권 침해에 해당합니다. 평균에 있는 사람들도 '잘하는 것''못하는 것'이 다르니까요.


우리나라에 경계성 지능을 가진 학생은 한 학급에 3명 정도라고 합니다. 전국적으로는 80만 명가량이라는데요. 이들은 사회성과 학습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학교와 직장 등 사회에서 세심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요즘은 학교에서 별도 지능검사를 하지 않아서 가족조차 경계성 지능인지를 ‘인지’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다음은 지난 15일 KBS <시사직격> ‘삶의 경계에 내몰리다’ 방송에 출연한 한 경계성 지능인의 말입니다.


왜 맨날 엄마들은 우리더러 ‘못한다, 못한다. 너 같은 애는 어차피 해봐야 다 거지 같다’ 이러면서 욕한다. 부모도 그렇고 나라에서도 그렇고 조금만 기회를 주면 안 되는 걸까. 이새롬(가명, 31세)


뿐만 아닙니다. 이들은 사회적 대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범죄 위험에 쉽게 노출되고, 실제 범죄 피해를 입은 사례가 언론에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법적으로 ‘장애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교육이나 사법적 지원, 복지체계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 방송에서는 2014년 우리 사회에 충격을 안긴 ‘염전 노예들’ 피해자 중 한 명인 백모 씨가 나왔습니다. 백 씨는 10년 동안 외딴섬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는데요. 백 씨를 감금하고 노동력을 착취한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습니다.


장애인 범죄 피해는 법적으로 ‘가중처벌’을 받지만, 이들은 법적 보호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염전을 벗어난 지 8년이 지났지만, 백 씨가 일도 못하고, 집에 틀어박혀 사는 이유입니다.


서울시는 지난 2020년 경계선 지능인 평생 교육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제도적 장치 마련을 논의하기 시작한 건데요. 여전히 우리 사회는 경계성 지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낮은 상태입니다. 변변한 실태조사도 없고요.


느리지만, 꾸준히 교육하면 어느 정도 개선됩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으면 이들이 설 자리는 없어지고, 인지능력은 퇴화합니다.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책임지는 건, 오롯이 부모의 몫입니다. 부모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도 사회적 부적응자가 되고 맙니다.

반마다 특수교육을 전공한 협력 교사나 전문성 있는 교사들이 한 분씩 더 배치된다든지, 이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북유럽 모델인데요.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그사이 느린 학습자들이 받는 결핍과 사각지대 문제들이 있잖아요. 하루에 몇 시간만이라도 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반 시스템이 운영돼서 맞춤형 수업과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건 분명합니다. -한신대 이재경 박사(‘청년 느린학습자’ 연구자)


내 가족, 내 아이는 ‘바보’가 아니니까 상관없고, 관심 없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어쩌면, 경계성 지능인 줄 모르고 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들이 더 이상 ‘투명 인간’ 취급받아선 곤란한 이유입니다. 이들이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 되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지능의 경계가 삶의 경계로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그래서 100명 중 14명의 삶도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 모두가 머리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KBS 시사직격 MC 임재성 변호사 클로징 멘트

*이미지: 2022년 4월 15일 KBS <시사직격> 방송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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