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요의 길에서 내가 마주친 것들에 대한 연가

봄밤 산책로에서

by 류재민

저는 일요일 저녁이면 집 근처 산책로를 거닐곤 합니다. 요즘처럼 날씨가 포근하면 밤 산책하기 딱 좋습니다. 봄밤에 불어오는 살랑바람은 마음을 여유롭게 만들어 줍니다. 하천 길을 따라 걸으며 지난 일주일을 돌아보고, 앞으로 일주일을 설계합니다.


‘지난 한 주도 열심히 살아냈다, 이번 주도 끈질기게 살아보자’ 하천 물속에 비친 달빛을 길어 올리듯 자존감을 끌어올립니다. 쉽게 말해 '에너지 충전 타임'인 셈입니다.


봄꽃의 화사함은 밤에도 지지 않습니다. 벚꽃 진 자리에 흰색부터 보랏빛, 분홍빛으로 물든 영산홍이 가던 길을 잡아 세웁니다. 아카시아 단 향이 멀리서 날아와 코끝에 스밉니다.


산책로에서 제 발길을 세운 흰색 영산홍입니다.

꽃은 아름다운데, 풀은 얄밉습니다. 풀로 태어난 게 죄입니다. 저는 어제 밭에 난 풀에 약을 쳤고, 남은 풀은 오늘 어머니께서 약통을 짊어지고 마저 제거에 나섰습니다. 이삼일 후면 농약이 풀뿌리까지 타고 들어가 누렇게 말라죽을 것입니다.

하지만 녀석들이 죽기 직전 토해낸 씨앗은 보란듯이 그자리에서 다시 솟아날 게 틀림없습니다. 바람을 타고 흩어져 바람보다 먼저 일어날 겁니다. 그래서 김수영은 ‘풀’의 끈질긴 생명력을 시로 썼나 봅니다.


다시 산책로를 걷습니다. 음력 사월 초파일을 앞두고 사찰에서 내건 연등이 산책로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저처럼 마스크를 쓰고 나온 이들이 늘어선 연등처럼 줄지어 지나갑니다. 적요 속을 따라 걷기도, 따로 걷기도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꽃향기가 납니다. 달 같은 가로등이 그 길을 밝혀 비춥니다.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있으면 꽃은 어떻게 저 고운 빛깔과 향기를 제 몸속에 갖추고 있었을까를 생각하게 되고 이내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다 보면 우리도 하나의 꽃나무요, 우리의 몸과 마음속에도 각양각색의 꽃과 향기가 들어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문태준 산문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 15쪽

이 산책로는 요즘 공사 중입니다. 하천 정비 사업을 하고 있는데요. 철제 펜스가 높습니다. 이쪽에서 반대쪽이 보이지 않습니다. 꽉 막혀 답답함도 느껴집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려면 철 강판을 댄 임시 교각을 건너든지, 온 길을 돌아가야 합니다. 그사이에 학교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산책로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행여나 아이들이 이곳을 지나다니다 다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 다니는 학교 앞 산책로는 하천 정비공사가 한창입니다. 아이들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안전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운동장입니다. 내일은 또다시 아이들로 재잘거리겠죠.

일요일 밤,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축구 골대도, 농구 골대도, 철봉도, 미끄럼틀도, 그네도 서로 멀뚱멀뚱 쳐다볼 뿐입니다. 어쩌면 내일이면 찾아올 아이들을 기다리며 휴식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학교도 쉼의 시간을 갖고 여유로운 휴일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낮에는 아이들과 함께 거주지 외곽에 있는 계곡에 다녀왔습니다. 따스한 봄날을 즐기려는 상춘객으로 붐볐는데요. 한쪽에 겨우 자리를 펴고 텐트를 쳤습니다. 아이들과 냇물이 흐르는 곳에서 물놀이를 하며 한때를 보냈는데요. 물가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물체에 두 눈이 희번덕했습니다. 물고기는 아닌데, 뭔가 재빠르게 돌 틈으로 숨는 게 보였거든요.

숨을 죽이고 다가가, 가만히 돌을 들어 올리고,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새뱅이’라고 불리는 민물새우였습니다. 아, 이런 곳에 새우가 살고 있다니. 저는 아이들을 불러 새우를 보여줬고, 신난 아이들은 새우잡이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저도 쭈그리고 앉아 다 마신 플라스틱 컵으로 한두 마리씩 잡아보니 재미가 쏠쏠하더라고요. 스무 마리 남짓 잡았을까요? 플라스틱 용기에서 살아보겠다고 톡톡 튀어 오르는 녀석들이 신기하기도 하고요.


오늘 아이들과 계곡에서 잡은 민물 새우입니다.

집에 올 적 물속에 풀어줬습니다. 몸속에 작은 알을 품고 있는 녀석들을 가져다 잡아먹으면 죄책감이 들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미물이라도 가족이 있는 생명체들이니까요. 녀석들의 시간과 공간을 침범한 것도 대단히 미안했습니다.


마침 요즘 읽고 있는 천수호 시인의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에 ‘새우의 방’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일부만 옮겨 봅니다.

잔발을 멈출 수 없어 발의 개수는 무수해졌고
발을 쓸 수 있는 방은 더 좁아졌다
안전한 뜰채를 든 인맥은 처음부터 없었다
알고 지낸 사람들은 눈동자로만 요약되어 창을 가득 메우고
뒷주머니까지 뒤집어 보여준 훤한 일상들
이미 등은 가파르게 휘어
새우의 발놀림을 멈추게 하는 게임은 없다
혼자만의 시간은
중독성 있는 물소리로 흘러
뚜껑이 열리면 더 깊은 어둠으로 튀어오를 수도 있겠다


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저는 또 내일을 준비합니다. 거리두기가 풀렸습니다. 아이들은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갑니다. 어른들은 재택근무를 마치고 직장에 나갑니다. 어르신들은 유모차를 밀고 경로당으로 향합니다. 일상으로 복귀는, 그토록 우리가 그리던 날이었습니다.


그런데요. 막상 다시 가려니, 기분이 뛸 듯이 기쁠 정도는 아닌가 봅니다. 코로나에 지친 삶이 그만큼 길었다는 의미겠죠. 그래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일정 기간 적응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와 산책하며 느낀 시상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노트북을 폈는데, 이제는 덮을 시간입니다. 그래야 월요일 아침, 상쾌한 몸과 마음으로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지 않겠어요?


오늘 띄워 드리는 노래는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 입니다. 즐밤, 즐잠 하세요.

*영상출처: 신해철 - 일상으로의 초대 (가사자막)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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