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여행 중에 경암동 철길마을이 유명하다고 해서 들렀습니다. ‘레트로 갬성’ 뿜뿜한 장소였는데요. 어린 시절 초등학교 앞 문방구와 구멍가게에서 팔던 놀거리와 먹을거리가 즐비했습니다. 먹을 건 대부분 불량식품이었고, 잡화 역시 얼마 못 가 고장 나거나 금방 쓸모를 잃는 잡동사니였습니다. 그래도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 가족뿐만 아니라 동생 식구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철길을 따라 오붓하게 걸었습니다. 비가 흩뿌리는 날씨에 우산을 여러 번 접었다 폈다 했지만, 다들 발길은 가벼워 보였습니다. 어른들에게는 옛 추억을, 아이들에게는 처음 본 물건에 신기함을 제공한 공간이었습니다.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 '슬기 캐리커처' 사장님께서 기념품으로 주신 스티커입니다.
철길 중간에 캐리커처 점이 나타났습니다. 업장 입구와 벽에는 30대 젊은 사장님이 직접 그렸다는 유명인들의 캐리커처가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외국인으로는 도널드 트럼프와 ‘퀸’의 리더 프레디 머큐리, EBS 화가 아저씨로 유명한 밥 로스, 미스터 빈, 전설의 복서 로키를 비롯해 마릴린 먼로와 고흐 등이 있고요.
국내 인사로는 백종원과 유재석부터 강호동, 아이유에 북한의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 위원장까지 다양했습니다. 동생 부부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저와 동생 부부 셋은 긴 소파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순한 맛과 중간 맛, 매운맛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요. 매운맛으로 갈수록 캐리커처 스타일이 코믹하고 엽기적이라고 합니다.
인생 첫 캐리커처에서 상처받지 않으려면 매운맛은 피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순한 맛과 중간 맛의 ‘중간’으로 결정했습니다. 각종 국제대회 1위에 빛나는 작가님은 입담도 수준급이었습니다. 각 인물의 포인트를 살려 쓱쓱 싹싹 손놀림 몇 번에 작품 하나가 뚝딱 완성됐습니다.
작가님은 “너무 걱정하지 말라”라고 저희를 안심시켰는데요. 그래도 가슴이 두근두근,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설렜습니다. 드디어 완성작이 공개된 순간, 모두가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너무나 닮았기 때문입니다. 흐뭇해하는 동생 부부를 보니 므흣했습니다.
저와 동생 부부 캐리커처입니다. 이 것도 썩 맘에 들진 않습니다.
저는 여세를 몰아 단독 캐리커처에 도전했습니다. 캐릭터 명함이나 프로필로 사용할 목적이었는데요. 작가님이 안심 멘트에 별다른 걱정 없이 먼 산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5분 정도 지났을까요? 드디어 완성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먼저 그림을 본 제 아이들과 조카가 깔깔깔, 웃는 게 아니겠어요. 뭐지, 이 불길한 느낌은? 이러다 이거 새되는 거 아녀? 별의별 생각에 찰나의 시간은 억 만년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끝내 보고야 말았습니다. 마동석을요. 제 눈앞에 그려진 캐리커처는 절대 제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부터 아내, 동생 부부, 조카, 심지어 제 아이들까지 “아빠랑 똑 닮았어”라며 배꼽을 잡고 웃는 게 아니겠어요. 이런.
“정말 내가 이렇게 생겼다고?” 이 말을 뻥 안치고 거짓말 않고 스무 번은 더 했을 겁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캐리커처라고 해도 이건 아니었습니다. 돈 몇만 원이 아까운 게 아니었습니다. 내 캐릭터가 정말 이렇다고?! 작가님은, 님은 무슨. 작가는 분명 야매, 아니 근본 없는 돌팔이일 거야,라고 수없이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현실은 딴판이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주변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한 포인트와 풍모가 매우 뛰어나다고 엄지 척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이게 여론이라는 건가요? 모두가 저랑 똑같다고 몰아붙이니 혼자서 우길 힘이 사라지더군요. 결정타는 아내가 날렸습니다. "그럼 당신이 이정재처럼 생긴 줄 알았어?"
그렇습니다. 나 혼자 아니라고 암만 우겨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제가 보는 저와 남이 보는 저는 같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저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생겼는지, 특징이 무엇인지, 어떤 인상으로 비쳐지는지. 저는, 저만 알았습니다. 정말 이정재인줄 알았습니다. 사진으로는 확인할 수 없고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를 난생 첫 캐리커처를 통해 깨우쳤습니다. (매운맛으로 주문했으면 난리 났을지도.)
정말 저랑 닮았나요? 제 눈에는 암만 봐도 마동석입니다. ㅠㅠ
그래서, 캐리커처는 어떻게 했냐고요? 별 수 있습니까. 액자에 고이 모시고 왔죠. 지금은 거실 책장 한가운데 마동석 한 분이 떡하니 센터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자꾸 보다 보니 살짝 귀여운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인정하면 나는 마동석이야) 근데, 진짜 저랑 닮았나요? 아닌 것 같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