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사진 신부’를 아시나요?

우리가 몰랐던 이주 여성들의 독립운동

by 류재민

며칠 전 KBS ‘다큐 ON’ 프로그램에서 <하와이의 사진 신부들>을 방송했습니다. ‘사진 신부’라는 제목만 보고는 선뜻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신부라는 단어가 ‘가톨릭 신부(神父)’를 뜻하는지, ‘신랑 신부(新婦)’를 의미하는 건지 모호했으니까요. 방송을 보니 후자였습니다.

일제강점기 하와이로 시집을 간 신부들 이야기였는데요. 이들은 왜 머나먼 타향으로 시집을 갔을까요? 당시 조선인 남성들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끌려가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렸습니다. 뼈 빠지게 일해도 품삯은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매만 안 맞으면 다행이고요.

농장에는 여성들이 없어 남성들은 결혼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국의 여성들에게 사진을 보내 청혼을 한 겁니다. 외국 선교사들에게 이국땅의 소식을 전해 들은 조선 여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또는 가난이 싫어서, 또는 넓은 세상에서 공부가 하고 싶어서 이민선을 탔습니다. ‘사진 신부들’이란 남성들이 보낸 사진을 들고 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이야기는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엄마 아빠가 내게 해 준 이야기지. 무려 100년도 전에 일어난 일이야. 미래에 남편이 될 사람의 사진 한 장을 들고 한국을 떠나 이곳 하와이까지 온 여인들이 있었어. 그녀들을 ‘사진 신부’라고 불렀지. –사진 신부 고(故) 이희경의 딸 ‘에스더 권’

KBS ‘다큐 ON’ 갈무리

정작 하와이에 도착했을 때 사진 신부들의 실망은 컸다고 합니다. 남성들 실물이 사진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20대 청년 시절 찍은 사진을 보낸 40대와 50대 남성이 수두룩했답니다. 게다가 일부 남성들은 무능하기까지 했습니다. 청운의 꿈을 꾸고 먼 길을 온 어린 신부들은 날벼락같은 현실을 마주한 것이죠. 아버지뻘 되는 사람과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야 했으니. 결혼을 포기하면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고(故) 천연희 여사. 그녀는 1915년 열아홉 살에 고향을 떠나 사진 신부로 하와이로 왔습니다. 자신보다 스물일곱 살이나 많은 무능한 남편을 만나 절망했고, 3번의 결혼을 하며 아이 여섯을 낳고 키우며 생계를 이끌어야 했습니다.


KBS ‘다큐 ON’ 갈무리

이처럼 당시 사진 신부들은 여러 악조건에서 하와이에 정착하려고 아등바등 살았습니다. 남편과 맞벌이하며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여성 단체를 조직해 활동했고, 떡과 달걀을 팔아 번 돈을 식민지 조국에 독립자금으로 보냈습니다.

이희경 여사는 독립자금을 들고 3.1 운동 즈음 조선을 찾았습니다. 당시 네 살 딸과 함께 친정을 방문하는 척하면서 하와이에서 모은 독립자금을 전달하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됐고, 1년간 옥살이했습니다.


그녀는 석방 후 하와이로 돌아가서도 독립운동을 계속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기록으로 남긴 천연희 여사도 최근 독립운동에 참여한 기록이 발견되면서 올해 광복절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이주 여성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독립운동사입니다.


100년도 더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군. 이것은 용감함과 용기, 열정, 나라를 향한 사랑, 그리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더 좋은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지. 내가 말해 준 이 이야기가 그리고 그들의 삶이 다른 이들에게 영감이 되기를. 누구도 이 여성들의 용기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네. -고(故) 이희경의 딸 ‘에스더 권’

하와이에서 한인공동체를 일구고 고유한 정체성과 문화를 지켜나갈 수 있었던 것은 사진 신부들이 있어 가능했다. 그래서 사진 신부에 대해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은 한국 이민사의 시작이자 뿌리이다. 사진 신부 이희경의 딸 에스더 권은 지금은 잊혀진 사진 신부들의 용기를 기억해 달라는 마지막 말로 잔잔한 감동과 울림을 전한다. 2022년 8월 19일, 일요신문, <‘다큐 온’ 꿈 찾아 하와이 찾았던 사진 신부들, 기대와는 달랐던 그들의 삶> 중

제 아내도 하와이 신부입니다. 신혼여행을 거기로 다녀왔으니 하와이 신부인 셈이죠.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신혼여행지였던 하와이에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근데 제 아내는 해방된 나라에서 왜 ‘독립운동’에 열심일까요? 앗, 그녀가 브런치 구독자라는 걸 깜박했습니다. 그냥.. 그렇다고요. 하와이 신부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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