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쓴’ 대통령 해외순방 취재, 안 가길 잘했다

하마터면 돈만 ‘날리고’ 올뻔했다

by 류재민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4박 6일 일정으로 동남아 해외순방을 다녀왔습니다. 지난 11~15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 국가연합) 및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했는데요. 순방 가기 전부터 MBC 취재진의 전용기 탑승 배제로 시끌시끌했습니다. 그러더니 순방지에서도 언론의 취재 논란은 이어졌습니다.


대통령실은 순방 기간 대통령 내외 공식 일정을 사후 보도자료로 냈습니다. ‘전속’은 기자들이 직접 취재하는 게 아니라, 순방단에 따라간 대통령실 전속 촬영팀을 일컫습니다. 영상을 찍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는 분들이죠.


특히 ‘한-미,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풀(POOL·대표 취재) 기자단 취재를 막고, 전속 취재로 전환하면서 똑같은 내용의 기사들만 쏟아졌습니다. 거의 대다수 언론이 ‘대통령실에 따르면~’으로 시작하는 거죠.


다운로드.jpg 대통령실 제공.

지난 9월 미국 순방 때 윤 대통령이 ‘이 XX’부터 ‘쪽팔려서’ 등 욕설과 비속어 표현에 ‘바이든’을 ‘날리면’이라고 우기면서 비롯된 말실수가 또 벌어질까 우려 차원에서 사전 대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런 보도자료는 ‘감시는 싫고, 홍보만 해줘’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순방 기간 보도자료를 단 하나도 쓰지 않았습니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기자들이 현장에 있는 이유는 현장에 무엇이 있는지, 배석한 사람들은 어떤 눈빛을 주고받는지, 배경들이 어떤지, 돌발적인 상황에 어떤 제스처가 나오는지 취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424565_399816_4136.jpg 자료사진.

대통령실은 김건희 여사의 일정 역시 취재진의 취재를 허락하지 않으면서 보도자료를 대체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오드리 헵번 코스프레’ 논란에만 이목이 쏠렸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자단은 ‘집단적 비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몇몇 언론사만 기사로 비판한 정도입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순방 뒤 용산 대통령실에서 “사전 정상회담, 사후 정상회담 과정에 브리핑이 별로 없었고, (순방 일정이) 끝나고 브리핑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에 반해 미국이나 일본은 대통령이나 총리가 직접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했는데, (우리는) 이런 것들이 왜 안 됐는지 설명해 달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전, 사후 브리핑을 다른 쪽과 비교하는 건,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적절한 것 같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관련기사: http://www.dtnews24.com/news/articleView.html?idxno=735461


이번 해외순방에는 100여 명의 기자가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KBS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이 출입기자단에 청구한 비용은 1인당 약 900만 원이라고 합니다. 각 언론사가 순방 취재를 위해 적지 않은 비용을 냈지만, 결과적으로 보도자료나 받아쓴 꼴이 된 겁니다.


이러니 대통령실은 툭하면 맘에 안 드는 언론사의 전용기 탑승을 거부할지 모릅니다. 또 나가서도 기자들의 취재를 제약하고 보도자료나 뿌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맘에 드는 기자 2명만 따로 불러 ‘아아’나 ‘뜨아’를 마시면서 장시간 노닥 담소를 나눌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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