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무원 이봉창과 철도파업

KTX로 출퇴근하는 나는 어쩌라고

by 류재민

이봉창 열사를 아시나요? 저는 그를 독립운동가이자 애국 열사로만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독립운동을 하기 전에 역무원으로 일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제가 자주 이용하는 용산역에서 말이죠.


서울역 대합실에서는 이달 말까지 ‘역무원 이봉창’ 전시회가 열립니다. 독립기념관과 한국철도가 주최하는 행사인데요. 안내 책자를 보니 ‘제83회 순국선열의 날 이봉창 의사 의거 및 순국 90주년’을 계기로 마련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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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jpg 서울역 대합실에서 이달 말까지 역무원 이봉창 열사의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봉창 열사는 어릴 적 어려운 가정형편에 일찌감치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18살이던 1919년 용산역에 임시직으로 취직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비정규직’인 셈이죠. 다행히 이듬해 정규직 신분을 얻었습니다.


당시 그가 한 일은 기차가 들어오는 진로를 변경해 주는 ‘전철수(轉轍手)’를 거쳐 차량을 분리하고 연결하는 ‘연결수(連結手)’ 역할이었습니다. 숙련공으로 성장했지만, 근무 여건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때에 맞게 승진하는 일본인들과 달리 몇 년이 지나도 승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국 1924년 역무원을 그만뒀습니다. 정든 첫 직장을 나올 때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이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가스회사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일왕 즉위식을 구경하다 한글 편지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구금되는 일을 당하면서 독립운동을 하기로 결심한 거죠. 지금의 이봉창 열사가 있게 만든 것은 바로 부당한 대우와 차별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나도 직장일이나 생활이 점점 타락으로 치달아 남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게 되었고, 따라서 사상도 저절로 변해 어떤 사상운동에 몸과 마음을 던지기로 마음먹고 기회를 엿보았으나 좋은 기회를 찾지 못했다."
일왕 즉위식 구경 중 경찰에 붙잡혔다 나온 후 '이봉창 상신서' 중

철도노조가 오늘부터 태업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제 출퇴근 열차인 KTX는 정상 운영됐습니다. 하지만 무궁화호와 새마을호를 비롯해 일부 열차는 운행 중지나 지연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노조는 현재 모든 조합원이 시간 외·휴일 근무를 거부하는 방식의 준법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더 큰 걱정은 오는 30일과 다음 달 2일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예고입니다. 그렇게 되면 피해는 출퇴근 이용객과 시민들이 고스란히 입을 테죠. 시민 불편을 초래하는 노조의 파업은 찬성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왜 파업을 강행할 수밖에 없는지는 곰곰이 살펴볼 일입니다.


0.jpg 철도의 정상화를 기원합니다.

노조의 이번 준법투쟁은 지난 5일 경기도 의왕 오봉역에서 일어난 사망사고에서 비롯됐습니다. 노조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신규 노선 확대에 따라 안전 인력 861명 증원을 요청했지만,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는 14%인 125명만 승인했습니다. 그 사이 3인 1조로 해야 할 일을 2인 1조로 투입했던 오봉역 철도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올해만 4번째 사고라고 합니다.


노조는 또 지난 수개월 간 진행된 임금 및 단체협약 갱신을 위한 단체교섭에서 한국철도 관리자들이 승진 독식과 불평등한 임금체계를 고집하고 있어 노조가 총력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습니다.


9.jpg 이봉창 상신서 중에서.

일터에서 일하다 죽는 근로자는 건설 현장이나 화력발전소, 빵 공장뿐만이 아닙니다. 안전한 근무 환경을 만드는 건 사용주의 책무입니다. 더구나 철도는 전 국민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고, 한국철도는 공기업이기 때문에 그 책임은 더 크다고 할 것입니다.


여기에 승진 독식과 불평등한 차별은 개선해야 할 과제입니다. 100년 전, 이봉창 열사가 일본인들에게 받은 차별을 독립 국가까지 이어져선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남과 세상을 원망하고 사상마저 변했던 이봉창 열사의 역사를 되풀이한다면 우리는 항상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모쪼록 노조와 국토부, 한국철도가 원만한 타협에 이르길 고대합니다. 매일 같이 철도를 이용하며 출퇴근하는 제가 이렇게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화물연대도 파업에 돌입했다는 소식에 거기도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정말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러는지.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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