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잇값을 좀 하라고요

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데

by 류재민

나이 값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른이 되면, 어린이나 청소년기보다 성숙해집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서도 어른이 된 줄 모르고 마냥 어린애처럼 구는 어른이 있습니다. 이런 어른을 우리는 ‘어른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어른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 무시하라고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라면요? 예를 들면, 직장 상사나 동료나, 부모님이라면? 쉽게 무시할 수 있을까요?


누구 하나가 그 조직이나 구성원으로 이탈하지 않는 이상 무시하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계속 부딪쳐야 하니까요. 왜 그런 소리를 하냐고요? 회사나 가정에 무슨 일이 있냐고요? 그건 아니고요.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 얘기를 들어서 하는 소리입니다. 가부장적 사고방식에 빠져 자기 말이 다 맞고, 자기 말을 따라야 하고,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고집불통 대마왕이요.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데, 사람은 익을수록 고개가 더 빳빳해지는 건 왜일까요?

제가 요즘 읽는 책이 <가녀장의 시대>입니다. 절반가량 읽었는데요. 재밌습니다. 왜 재밌냐고요? 읽어보면 압니다. 책에서 저는 ‘어른’의 존재 의미를 느낍니다. 우리 사회가 왜 어른 중심으로 가고 있는지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 ‘사실’처럼 ‘서사’합니다. (그러니까 한번 읽어보세요.)


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이고, 나이를 먹으면 나잇값을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대와 성별의 극단적 대립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우리는 그걸 알면서도 신경을 쓰지 않고 삽니다. 살아집니다. 그러다 어떤 사건과 사고에 직면해야 화를 내고, 분노합니다.


아내와 점심을 같이 먹다가 ‘화’와 ‘분노’의 차이를 두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저나 아내나 의견은 비슷했습니다. ‘화(anger)’와 ‘분노(fury)’는 영어 철자부터 다릅니다. 제가 정의하는 화는 단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감정입니다.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거나, 직장 상사한테 혼이 났다거나, 집에 늦게 들어왔다고 아내한테 바가지를 긁혔거나.


이런 건 오래가야 한두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오히려 저한테 ‘조언’과 ‘충고’를 한 건데, 제가 나잇값 못하고 흥분한 나머지 화를 낸 것일 가능성이 99.999999%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화를 낼 일은 없습니다.


반대로 분노는 ‘연대’와 ‘공동체적 의식’을 수반합니다. 이를테면 박근혜 국정농단이나 이태원 참사를 세월호에 빗대는 정치인들 사례가 그것입니다. 인간이, 인간 같지 않은 언행을 했을 때, 시간이 지나도 해결할 수 없고, 직접 나서 싸워야 할 때. 집단이나 군중이 봉기해야 하는 상황일 때. 바로 그것이 분노입니다. 손에 쥔 것이 촛불이든 횃불이든, 펜이든.


그래서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고, 성숙한 인간이 되고, 한 움큼의 권력이란 걸 잡으면 겸손하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랫것들’이 막 치고 올라오거든요.


저는 MZ세대는 아니지만, 때론 그들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할 말은 하거든요. 아닌 건 아니라고. X세대인 저도 그랬던 적이 있었겠지만,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아닌 건, 아닌 것도 같다, 뭐 이렇게 정형화하고, 보수화되어 가나 봅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요즘은 기성세대가 ‘아랫것들’이라고 부르던 세력이 위아래 같은 걸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딸 아들이 그 '아랫것들'일 수도 있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고, 국민 이기는 권력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나이를 먹으면 ‘꼰대’ 같은 말도, ‘시아버지’ 같은 말도, ‘사장님’ 같은 말도 하지 말고, 그냥 ‘오냐~그저 네 뜻대로 하거라’ 하세요. 그래야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며 따릅니다. ‘오구오구’ 칭찬도 하세요.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만든다잖아요. 갑자기, 고래고기 먹고 싶다.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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