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는 산타는 안 오고, 코로나가 왔습니다. 몇 년을 용케 피해 다녔는데요. 올해를 10여 일 앞두고 덜컥 걸리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그동안 저를 ‘슈퍼 면역자’로 인정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타는 경부선 KTX로 출퇴근하고, 전국에서 가장 붐빈다는 서울역과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고,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떠들고, 밥 먹고, 술 먹고 다녀도 용 하다 싶을 정도로 안 걸렸으니까요.
방역 수칙을 잘 지키던 아내는 지난 봄 코로나에 가장 먼저 걸렸습니다. 네 식구 중 유일하게 걸려 안방에 격리됐습니다. 덕분에 저와 아이들 모두 검사를 받았지만, 모두 음성이었죠.
하지만 당시는 밀접접촉자도 예방 차원의 격리를 해야 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저와 아이들은 출근과 등교를 하지 못했습니다. 집 안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다녔고, 환기를 자주 했으며, 밥은 삼시세끼 제가 다 차렸습니다. 아내의 격리 공간에도 창문을 통해 음식물을 날랐습니다.
오라는 산타는 안 오고 코로나가 왔습니다. 끙.
이제는 정반대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와 딸, 아들 모두 걸렸습니다. 아내만 음성이 나왔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당분간 친정에 가 있으라고 했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거 아닌가베.”
그러자 아내는 속으로 매우 기뻐하는 듯한 기분을 애써 숨기고 짐짓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습니다. “자기도 아플 텐데, 애들 밥은 누가 차려줘.” (여기서 잠깐, 진심은 좀 있다고 고치겠습니다. 아내가 이걸 보거든요.)
저나 아이들 모두 무증상 확진자였습니다. 저는 아내더러 “우리 걱정은 말고, 처가에 가서 며칠 있다가 와. 집에는 들어오지 마. 들어왔다간 다 죽어.” 그렇습니다. 바이러스가 진동하는 집에 들어오면 암만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감염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아내는 “그러면...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쿠팡님께 아침마다 가져다 놓으라고 할게.”
“... 알겠소. 그래야 봄 일주일, 겨울 일주일 1년에 2주일 수고하는구먼.”
그렇게 엊저녁부터 오늘 저녁까지 꼬박 하루 동안 집안에서 재택근무를 하며 아이들 식사를 챙겼습니다. 문제는 제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진 겁니다. 간헐적 기침에 가래까지 나옵니다. 일도 해야 하니 이중고인데, 그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활기차게 뛰어다닌다는 겁니다. 뛰어다니다 못해 날아다니는 것 같습니다. 으휴, 이것들을 그냥.
삼시세끼 식모살이가 따로 없습니다. 오늘 아침인데요, 부실 식단은 아니라 아침은 원래 가볍게 먹는 것이 가풍입니다. 끙끙!
전업주부들의 공통 ‘고통 사항’인 “점심에는 뭐 해 먹나” “저녁에는 또 뭘 해 먹나” 고민에 더해 설거지와 청소, 빨래가 산더미처럼 드러누워 있습니다. 아, 코로나란 무엇인가. 일년에 2주일은 무슨 의미인가.
잠깐, 가만히 보니 제가 코로나 검사를 받기 전날, 아내와 같은 침대를 썼습니다. 물론 ‘잠만’ 잤습니다. 이불도 따로 썼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몇 시간을 같이 누워서 숨을 쉬고 있었는데(등도 돌리고 잤나??) 안 걸렸습니다. 더구나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 아들 녀석의 입에 ‘뽀뽀’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 걸렸습니다.
아, 슈퍼 면역자는 따로 있었군요. 그냥 마스크 쓰고 돌아다녀도 크게 무리는 없어 보이는데. 처가에는 괜히 보낸 걸까. 일말의 후회가 뼈에 사무칩니다. 무려 엿새 남았습니다. 여보, 언제 와. 애들이... 아니, 내가, 보고 싶..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