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나 싶더니 금방 햇빛이 났다. 하늘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검은 구름이 군데군데 끼어 있었지만, 멀리 보이는 하늘은 푸른빛을 머금고 있었다. 한두 방울 떨어지는 비는, 소나기겠거니, 싶었다. 바람이 머리 위 구름을 밀고 가면 맑은 하늘이 드리울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들은 다시 집에 들어가서 우산을 가져가자고 했다. 지나가는 비라서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는 내 주장과 혹시 모르니 챙기자는 아들 주장이 부딪쳤다. 결국 아들 주장을 따르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산은 제가 챙길게요. 아빠는 베란다에 열어둔 창문을 닫으세요.” 하여간 준비성 하나는 철저한 녀석이라는 생각을 속으로 하면서 활짝 열어둔 베란다 창문을 닫았다. 창밖에는 가랑비가 희미하게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우산을 손에 쥐고 집을 나섰다. 휴일에 집에만 웅크리고 있으니 좀이 쑤셨다. 아내와 딸은 각자 볼일을 보러 출타한 상태였고, 아들은 유튜브 삼매경에 빠졌다. 전형적인 ‘집돌이’인 아들은 주말이나 휴일에 밖에 나가는 걸 질색했다. 하지만 여느 때와 달리 집 근처 커피숍에 가자는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순순히 따라나섰다.
아들은 우산을 접고 펴기를 반복했다. 조금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지면 썼다가 그치면 바로 접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그렇게 하는 게 더 번거롭겠다”라고 했다. 아들은 “비 맞으면 머리카락 빠진대요. 대머리 되면 안 되니까. 아빠도 머리가 많이 빠졌는데, 웬만하면 쓰세요.” 듣고 보니 머리를 감을 때마다 훤히 보이는 정수리가 떠올랐다. 아찔했다. 자동반사적으로 우산 스위치를 만지작거렸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올 때까지 비는 오다가 말다가 했다. 나는 끝내 우산을 펴지 않았다.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를 지나 커피숍을 가로지르는 교각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검은 구름은 거의 모습을 감췄고, 구름 사이에 숨어 있었던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곧이어 뜨거운 빛을 발산했는데, 어찌나 눈이 부셨나 똑바로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거봐라, 내가 금방 그칠 거라고 했잖아. 굳이 우산을 챙길 필요도 없고, 베란다 창문을 닫을 정도까진 아니었다고.”
내 말을 들은 아들은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둘은 덤덤하게 커피숍으로 향했다. 커피숍 문 앞에 다다랐을 때, 한바탕 소나기가 퍼부었다. 우리는 안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갔다. “아빠의 일기예보는 틀린 것 같군요.” 아들은 젖은 머리를 툭툭 털면서 말했다. 아들의 말에 나는 그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베이커리를 함께 파는 커피숍이었다. 나와 아들은 서로가 먹을 에그타르트와 호두 파이를 골라 쟁반에 담았다. 그리곤 카운터 앞에 서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산딸기 스무디를 주문했다. 주문을 마치고 테이블에 앉았을 때, 어느새 비는 또 멎었다. “호랑이가 장가를 가나보다.” 내 말을 들은 아들이 ‘그게 무슨 말이냐’라는 식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렇게 맑은 날 비가 오면 호랑이가 장가를 간다거나, 여우가 시집간다고 해.” 나는 어디서 봤는지, 들었는지 한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줬다. 옛날옛날 한 옛날에 깊고 깊은 산속에 여우 한 마리가 살고 있었대. 여우는 산의 주인이 되고 싶었지.
하지만 호랑이가 건재한 이상 ‘영원한 2인자’로 살 수밖에 없었어. 결국 여우는 호랑이와 권력을 나눠 가지려 결혼했지. 그러자 여우를 짝사랑하던 구름이 슬피 울어 맑은 날에도 비가 온다는. 뭐 그런 ‘호랑이와 곶감’ 시절 이야기를 AI 시대를 사는 10대 청소년에게 하고 있었다. 여우비 얘기를 하는 동안 주문했던 음식이 나왔고, 우리는 테이블 앞에 마주 앉았다.
나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며칠 뜸했던 브런치를 쓰기 위해서였다. 먹을 걸 앞에 두고 글을 쓰려니 퍼뜩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내게 아들은 이런저런 글감을 제안했다. 물론, 글로 쓰기 어려운, 다분한 ‘초딩스토리’였다. 한글 파일 빈 문서를 열어놓고, 커피를 몇 모금 홀짝거렸다. 뭐라도 좀 써보라고 재촉하는 듯 커서가 제자리에서 계속 깜빡거렸다. 깜빡거리는 커서를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급해졌다. 초조했다.
안 되겠다 싶었다. 이번에는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책이라도 읽다보면 마음이 안정되겠지. 그러다 ‘쓸 거리’를 발견하거나 떠올릴 수 있겠지. 한 장, 두 장, 세장 넘기다 아들을 흘끗 봤다. 손바닥만 한 에그타르트와 호두 파이는 부스러기만 남았고, 산딸기 스무디도 반이 줄었다. 노트북 앞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얼음만 몇 개 남은 채 바닥을 드러냈다.
“다른 거 뭐 더 먹을래?” 아들은 다시 일어나 빈 접시를 들고 빵이 놓인 매대를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카스텔라를 집었고, 나는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블랙빈’을 담았다. 음료는 더 시키지 않았다. 대신 얼음물을 잔에 따라놓고 앉았다. 아들은 “아직도, 글감이 생각나지 않느냐”라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10대 청소년의 인내심은 길지 않다. 특히 만끽하던 ‘휴일 집콕’을 중단하고 나왔으니.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비가 내렸으니. 호랑이가 장가를 간다느니, 여우비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세상 알아듣기 힘든 말만 하는 아빠를 보고 있으려니, 먹을 것만 챙겨주고 노트북과 책만 보고 있으니, 얼마나 속이 답답하고 온 몸이 뒤틀렸을까. 갑자기 아이에게 미안함이 밀려왔다. “아빠랑 있는 거 재미없지?” “말이라고.”
우리는 커피숍에 들어간 지 한 시간도 안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집에 가서 뭘 할까’라는 궁리만 하는 듯했다. 비 그친 휴일 오후의 날씨는 습하고 더웠다. 아들 이마와 머리에 송골송골 땀이 났다. 나도 그랬다. 가서 얼른 찬 물에 샤워하고, 선풍기라도 틀어놓은 채 무슨 글을 써야 할지 궁리해 볼 참이다.
괜히 나가서 돈만 쓰고 온 건가. 가만, 이것도 글이라고, A4 두 쪽을 채웠네. 2만 4천 원어치 글 한 꼭지를 이렇게 썼다. 주인 잘못 만나 고달픈 뇌여, 고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