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이무기. 올해 나이 마흔넷. 1인 인터넷 신문사 기자로 일한다. 기자 생활을 한 지는 15년째. 충청도의 한 지역 일간지를 다니다 퇴사했다. 1년을 멍때리고 쉬며 놀았다. 그러다 2년 전부터 나 홀로 신문사를 운영하고 있다. 부모님이 물려준 고향 집을 개조해 사무실 겸 작업실로 쓰고 있다.
나는 가을이면 이곳에 와 초봄까지 머물며 ‘글’을 쓴다. 밥벌이를 위한 기사는 날마다 쓴다. 여기서 말하는 ‘글’이란 ‘문학’을 말한다. 그렇지만 변변한 완성작 하나 없다. 매번 썼다 지우기를 거듭하다 끝난다. 시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고, 수필도 그렇고, 희곡도 그렇다. 어영부영하다 초고의 중턱에서 돌아서 내려온다. 그리고 다시 낑낑대고 올라가다가 또르르, 도로 굴러떨어진다. 마치 시시프스의 돌처럼.
엊저녁의 일이다. 둔탁한 굉음이 자판기 소리만 들리던 집안의 정적을 깼다. 쿵, 인지 쾅, 인지 엄청난 충격파에 집이 흔들릴 정도였다. 어찌나 놀랬나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나는 의자와 함께 뒤로 자빠질 뻔했다. “지진인가?” 겁에 질려 책상 밑으로 숨었다. 그 와중에 노트북은 챙겨 들었다. 1분이 지났을까, 5분이 지났을까. 사위는 고요했고, 땅거미 진 창밖은 적막했다.
살며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대청마루를 가로질러 간다. 찬밥을 몰래 먹으러 온 들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대체 무슨 일이야?’ 마음은 어지럽고 혼란했다. 슬리퍼를 반쯤 걸쳐 신었다. 마당을 지나 대문 밖까지 나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환청을 들었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향을 틀어 다시 대문 안쪽으로 돌아섰다. 그 때였다. 뒤란 쪽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래, 환청은 아니었어.” 연기 나는 쪽으로 조심스럽게 발길을 옮겼다. 몇 발 못가 나는 소스라치듯 놀랐다. 얼마나 놀랐으면 비명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옴짝달싹 못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얼굴은 발갛게 상기됐다.
눈앞에는 금속의 괴물체가 땅속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원반형의 은회색 물체. 둘레는 마을 어귀 아름드리나무만 했고, 높이는 3미터는 족히 돼 보였다. 그건 바로 티브이나 영화에서만 보던, UFO(미확인비행체)였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물체의 더미에서 희미한 형체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형상은 사람인데,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로 작았다. “외계인?”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설마 날 공격하려는 건 아니겠지? 지구정복의 야심을 품고 침공한 안드로메다의 외계 종족은 아니겠지?
발가벗은 몸이 겨우 상체를 일으켜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은 움푹 들어갔고, 귀는 부처님 귀마냥 크고 길었다. 코는 시츄처럼 납작했으며, 콧구멍은 넓었다. 입은 길고 가느다랗고, 검푸른 빛이 돌았다. 그 검푸른 입에서 신음 섞인 음성이 새어나왔다. “뭐해, 와서 좀 일으켜주지 않고.”
그의 첫 마디는 구조요청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끌려 다가갔다. 그리고 어린애 같은 몸을 지닌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은 어린애 살결처럼 부드러웠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에는 잔주름이 자글거렸다. 팔은 대파처럼 가느다랗고, 손가락은 네 개였다.
‘인간은 아니구나. 그런데, 지금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볼을 살짝 꼬집었다. 아픈 걸 보니, 꿈은 아니었다. 순간 소름이 확 끼쳤다. 나는 쿵쾅대는 심장을 애써 다잡고 그에게 물었다.
“너, 누구야?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안녕, 난 도깨비라고 해.”
“뭐? 도, 도깨비?”
“그래, 내 이름은 도깨비야.”
“그럼 혹시, 외계인?”
“응, 난 지구에서 오억 광년 이상 떨어진 ‘카트휠’이란 별에서 왔어.”
“카트휠?”
“그래, 난 그 별의 정찰대장이야. 지구에 불시착했어.”
불시착?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야간비행사도 아니고. 난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혼이 반쯤 나간 것 같은 날 보던 도깨비가 말을 이어갔다.
“외계인을 처음 본 지구인의 표정은 이런 거구나.”
“넌 어쩌다 여기 떨어진 거야? 대체 왜?”
“기체 결함이 생겼어. 고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뭐라고? 굉음 소리와 연기를 보고 사람들이 올지 몰라.”
“그건 걱정하지 마.”
녀석은 손가락으로 동그랗게 원을 그렸다. 그러더니 작은 캡슐이 하나 공중에 떠올랐다. 도깨비는 곧이어 이렇게 주문을 외웠다.
“푸시키트 아우라.”
주문이 끝나자마자 땅속에 묻혀 있던 원반이 순식간에 캡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물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주변은 금세 말끔해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람?”
“놀랄 것 없어. 카트휠은 지구보다 1세기 빠른 과학기술을 갖고 있거든.”
“이럴 수가. 그런데, 넌 어쩜 이렇게 우리 말을 잘할 수 있지?”
“그것도 놀랄 것 없어. 아까도 말했지만, 카트휠은 지구보다 앞선 언어를 갖고 있거든.”
“지구보다 앞선 언어라고?”
“그래, 지금 내가 쓰는 말은 우리 별에서는 훈민정음 정도라고 할까?”
“어떻게 그럴 수가?”
도깨비는 다시 몸을 쭈뼛거렸다. 그러더니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 말이야. 나 좀 추운데, 옷을 좀 가져다 수 있을까?”
도깨비의 몸은 구석구석 닭살이 돋아 있었다. 기체 추락과 동시에 충격도 있겠거니와 기체 안 온도와 지구 밖 온도가 같을 순 없었을 터.
나는 도깨비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방 장롱에서 아이들이 어릴 적 입던 옷을 꺼내 입혔다. 도깨비는 옷이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한 표정을 하며 어린아이처럼 생글거렸다. 입혀놓고 보니 영락없는 초딩이었다. 도깨비와 나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1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