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신(新) 서동요’ 집필을 마치다
나는 꿈에서 본 장면을 하나하나 꿰맞췄다. 장과 선화공주 이야기를 다룬 소설의 얼개가 나왔다. 이후에는 무왕이 백제의 중흥기를 이끌었다는 것, 선화공주가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내용으로 쓸 작정이다. 그리고 이들의 장남인 의자왕을 끝으로 대백제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것으로 마무리할 생각이다.
제목은 ‘신(新) 서동요’로 지었다. 웹소설의 재미를 가미하기 위해 중간에 ‘처용가’를 각색해 넣기로 했다. 어느 날, 김유와 밤늦게 술을 마시고 돌아온 장이 문을 열었더니 이불속에 자신으로 둔갑한 도깨비가 부인인 선화와 누워 있었다. 그걸 본 장은 부친인 용의 몸을 빌려 노래를 불러 쫓았다는 이야기다.
“음, 서동요 속 처용가라.. 신박한데?” 나는 또 하나의 소재를 찾은 것에 쾌재를 불렀다. 소설은 일주일이면 집필을 마칠 것 같았다.
크게 기지개를 켰다. 의자에서 일어나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30분이었다. 처용가 속 도깨비를 떠올리니 오두막에 있는 외계인 도깨비가 생각났다. 주섬주섬 외투를 꺼내 입었다. 요 며칠 집필에 빠져 무왕산 발길이 뜸했다. 주머니에 막대사탕이 서너 개 쥐어졌다.
‘흐흐흐. 녀석, 큰 입이 더 커지겠는걸.’ 대문을 나와 부지런히 오두막으로 향했다. 11월의 날씨는 음산했다. 대낮이었지만, 어둑했다. 금방 눈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내가 오두막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도깨비는 안에서 비행접시 엔진 부분을 만지고 있었다.
“도깨비야, 어떻게 지냈어? 그간 소설 쓴답시고 뜸했어. 미안해.”
“아니야, 나도 비행접시 고친다고 바빴어.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야.”
도깨비는 하품과 한숨을 동시에 내쉬며 나를 맞았다. 그런 도깨비에게 막대사탕 하나를 내밀었다. 도깨비는 금세 얼굴이 환해졌다. 좀 전까지 쌓였던 피곤과 피로가 한꺼번에 사라진 듯 싱글벙글하며 사탕을 오물거렸다.
“이건 언제 먹어도 달콤하단 말이야.”
“사탕은 다 달아. 설탕 덩어리니까.”
“카트 휠에는 설탕이란 게 없어. 우리는 물만 먹어도 살거든.”
“그럼 다이어트를 할 일도 없겠네?”
“다이어트? 그게 뭐야?”
“살찐 사람들이 살 뺀다고 하는 건데, 무작정 굶기도 하고, 식이요법도 하고, 운동도 하고 그런 거야.”
“그렇군. 인간들은 참 별나. 그렇게 힘들여 뺄 걸 왜 먹지?”
“하하하. 그렇다고 안 먹고살 순 없잖아. 물론 적당히 먹어야겠지만.”
도깨비는 막대사탕 하나를 더 입에 물면서 내가 쓰고 있는 소설 이야기를 꺼냈다.
“풀리지 않던 부분이 풀렸나 보네. 어떻게 푼 거야?”
“꿈을 꿨어. 긴 잠은 아니었는데, 꿈에서 선명하게 소설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어.”
“대단하네. 당신한테는 필시 작가의 소질이 있는 거야.”
“에이, 별말씀을. 천운이라고 생각해.”
도깨비는 “내가 떠나기 전에 나오면 봤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나도 “그래, 그러면 좋겠다”라고 화답했다.
어느덧, 도깨비가 이곳에 불시착한 지 석 달이 되어 간다. 그 사이 도깨비가 타고 온 비행접시는 80%가량 수리를 마쳤다. 엔진 교체만 마무리하면 금방이라도 이륙할 수 있어 보였다. 엔진부는 내가 구해온 바가지 모양의 무동력 팬을 장착할 예정이다.
다만, 추운 날씨가 걱정이었다. 도깨비는 기체가 순간적인 에너지를 일으키려면 기온이 최소 영상을 유지해야 순조롭게 이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걱정은 날씨만이 아니야.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어.” 도깨비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표정에는 수심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