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도깨비의 고민
나는 도깨비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날씨보다 더 큰 문제가 뭔데?”
“연료.”
“연료? 그렇겠네. 자동차나 항공기나 연료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니까.”
“그런데..그 연료라는 게, 구하기가 어려워.”
“그래? 어디서 구해야 하는데? 말만 해, 내가 사다 줄게.”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야.”
“돈으로 살 수 없다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그건....나도 몰라...”
나는 도깨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기체의 핵심인 연료를 어디서 어떻게 구하는지 모른다니. 그렇다면 비행접시 수리를 끝낸다고 해도 이륙할 수 없다는 얘기 아닌가. 영영 카트휠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도깨비는 기운이 쭉 빠진 채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카트휠에는 불문율처럼 전해지는 얘기가 있어. 다른 행성으로 정찰 나갔다가 불시착한 다음 무사히 돌아온 경우는 없다는 거야. 추락과 동시에 목숨을 잃거나, 생포됐을 땐 그 자리에서 자살해야 하지.”
“어떻게 그럴 수가...”
“우리 별의 정체가 알려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어. 카트휠에서는 절반이 정찰대원으로 활동하는데, 지구와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뿐만 아니라 이름 없는 행성을 비행해. 그들 중 복귀하지 못한 대원들이 저 하늘 별처럼 많아.”
“아, 무섭고, 서글프다.”
“어쩔 수 없어. 우리는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소멸하는 종족이니까.”
나는 어떻게든 도깨비를 카트휠로 보내주고 싶었다. 도깨비도 어떤 방식으로든 연료를 구해 자기 별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나는 곧장 시내에 있는 도서관에 갔다.
가서 외계와 행성과 관련한 서적을 죄다 빌렸다. 그리고 그날부터 밤을 새워가며 책을 봤고, 비행접시 연료의 재료를 찾았다. 하지만 그 어떤 책에서도 그 해답을 찾을 순 없었다.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고, 국회 도서관에 가서 자료와 신문을 눈 씻고 찾아봐도 비행접시에 들어가는 연료 재료는 한 글자도 나오지 않았다. 국회 도서관을 나와 서울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오다 창밖의 마포대교와 한강을 바라봤다.
산자락 오두막에서 힘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도깨비가 떠올라 마음이 아렸다. ‘아, 이걸 어쩌나...’ 서울역 근처 중국집에서 고량주와 삼선 짬뽕을 시켰다. 몇 병을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 밤늦게 기차역에 도착했고, 택시를 타고 겨우 작업실로 돌아왔다. 부엉이 우는 소리와 함께 겨울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숙취는 오래가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오두막으로 향했다. 도깨비에게 갈 생각이었지만,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도 가야 했다. 도깨비가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대문을 나왔을 때, 고양이 가족이 졸졸 뒤를 따랐다. 더 이상 따라오지 말라고 손짓하자 중간에서 멈칫했다. 그새 많이들 컸다. 어느새 새끼들이 어미만큼 듬직해졌다. 누가 새끼이고 어미일지 모를 정도로. 철진이네 논을 지나 영숙이네 밭을 가로질러 무왕산으로 가는 길에는 응달에서 녹지 않은 눈 뭉치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찬 바람이 강하게 불었고, 날갯짓이 힘에 부친 솔개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강풍 때문에 날기 힘들어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가만히 쳐다보니 솔개의 발톱에 쥐 한 마리가 잡혀 있었다. 쥐가 다람쥐만큼 컸다. 아무리 힘센 솔개라도 그 무거운 녀석을 붙들고 은신처로 가기란 쉽지 않은 듯했다.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던 솔개는 결국 철진이네 논둑에 내려앉았다. 체력이 바닥났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사이 솔개에게 잡혔던 쥐가 발버둥 쳤다. 솔개는 놓치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솔개와 쥐의 생사를 건 투쟁이 시작됐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조용히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 쥐는 솔개의 발톱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쥐 역시 솔개와 육탄전을 벌이면서 힘이 소진됐다. 발톱에 긁혀 상처도 났다. 솔개는 발톱에서 빠져나온 쥐를 향해 달려들었다. 눈에 힘을 잔뜩 주고, 부리로 쥐를 쪼기 시작했다. 쥐는 솔개의 부리를 피하며 결사적으로 버텼다.
그때였다. 잠시 솔개가 숨을 고르는 사이, 쥐는 논둑 한 귀퉁이에 구멍을 발견했다. 그리곤 재빨리 구멍으로 도망쳤다. 방심했던 솔개는 아차 싶었다. 쥐가 숨어든 구멍에 연신 부리를 쪼고, 발톱을 넣어봤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솔개는 힘없이 날갯짓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쥐가 솔개를 이겼다. 거의 죽음에 다다랐지만, 살려는 의지가 자신을 잡아 먹으려던 솔개를 앞섰다. 그리고 살아남아 목숨을 부지했다. 솔개는 졌다. 다 잡은 먹이를 놓쳤다. 솔개의 눈에는 눈물이 알알이 맺혔다. 녀석은 어쩌면 은신처에서 먹이를 기다리고 있을 처자식을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솔개와 쥐의 결전은 끝났고, 그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입가에 쓴 웃음이 흘러나왔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목숨 붙어있는 존재는 다 같은 마음이구나.’
멀찌감치 오두막이 보였다. 도깨비는 오늘도 자신의 별로 돌아갈 비행접시 수리에 몰두해 있을 것이다. 풀지 못한 숙제인 연료 재료의 고민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