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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Jan 20. 2023

안녕, 도깨비(17화)

#17. 구미호 일가의 비밀

미호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려는 순간이었다. 어둑시니가 슬그머니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미호 눈에 들어왔다. 미호는 귀신이나 도깨비를 보는 영적 능력이 있었다. 구마적의 선조 대부터 능력을 대물림했다. 무당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무당보다는 퇴마사에 가까웠다.      


집 안으로 들어온 미호는 어둑시니를 한동안 노려보고 있었다. 어둑시니도 미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신경전이었다. 어느 한쪽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듯 팽팽히 맞섰다.     


어둠을 상징하는 어둑시니는 고려시대에 기록되기 시작해 조선시대에 요괴로 정착했다는 설이 전해온다. 미호는 어둑시니를 향해 꾸짖었다. “밤에 돌아다녀야 할 녀석이 무슨 일로 대낮에 돌아다니는 것이냐. 그것도 나이 많은 노인들만 사는 집에.”     


어둑시니는 미호를 노려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입에서는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났 고, 진득한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다리는 네 개였고, 상반신에는 털이 수북했다. 꼬리는 윤기가 흘렀고, 몸뚱이는 용맹한 사자의 형상이었다. 마치 스핑크스를 연상케 했다.  

    

미호와 어둑시니의 대치는 길어졌다. 그런데 어둑시니의 몸집이 커지기 시작했다. 공기를 잔뜩 머금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풍선보다 더 커진 녀석은 애드벌룬보다 커졌고, 집안이 꽉 찰 정도로 몸집을 키웠다. 미호는 그 몸집에 깔리고 말았다. 어둑시니에 눌린 미호는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 숨이 막혀 “켁, 켁” 소리만 지를 뿐이었다.      


‘이놈이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나. 이러다 숨 막혀 죽을 것 같아.’  

   

그때였다. 안방 문이 열렸다. 거동이 불편했던 미호의 아버지 구마적이 간신히 몸을 일으켜 미호에게 소리쳤다. “얼굴을 돌리거라. 저 녀석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 안 돼.”     

미호는 재빨리 눈을 질끔 감고, 얼굴을 부엌 쪽으로 돌렸다. 그제야 서서히 어둑시니의 몸이 줄어들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더니 이내 사라졌다. 미호는 정신을 차리고 옷매무새를 고쳤다. 그리고 안방으로 달려가 마적을 부축했다.      


“미호야, 큰일을 당할 뻔했구나.”

“아버진 괜찮으세요?”

“난 괜찮다. 저놈은 어둑시니라는 녀석인데, 사람이 지켜보고 있으면 몸집이 점점 커진단다. 계속 바라보거나 올려다볼수록 한없이 커져. 그러다가 결국에는 사람이 깔려버리고 숨이 막혀 죽을 수 있지.”

“그렇군요.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안 들더라고요.”

“시선을 돌리고 무시해 버리면 사라지는 성격이야. 관심을 주지 않으면 힘을 쓸 수 없는 요괴인 셈이지.”  

   

마적은 미호에게 어둑시니의 성향과 대처법을 알려줬다. 미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 온 팥죽을 꺼내 식탁에 올렸다.      


“그런데, 엄마는 어디 가셨어요?”

“응, 마트에 장 본다고 갔는데, 얼추 돌아올 시간이 됐구나.”     


마적의 말이 끝나자마자 현관문이 ‘삐빅’하고 열렸다. 미호 어머니의 강마순이 장 본 물건을 양손에 들고 들어왔다. 미호는 얼른 마순이 손에 든 짐을 들어 부엌으로 옮겼다.      


“아니, 뭘 이렇게 많이 사셨어요?”

“우리 딸래미가 온다는디, 맛난 것 좀 멕일라고 그라지.”


마순은 오랜만에 친정 나들이를 한 미호를 보며 활짝 웃었다. 미호는 마순의 손을 한참동안 잡고 있었다. 그사이 마적은 마순에게 어둑시니가 다녀간 사실을 알렸다. 순간, 마순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그 녀석이 또 왔다갔구만. 오매, 징 한 거. 이사를 가부러야 하나. 못 살겄다.” 

“도깨비들이 자주 와요?” 

“그렇당게. 요즘 들어 부쩍 늘었어. 어둑시니 말고도 도깨비도 와. 배고프다고 밥 달라고 소리치고, 아주 내가 그것들 땜이 죽겄어.”

“주술을 써서 쫓아 버리지 그러셨어요?” 

“요즘 내가 나이를 먹었나 신통력이 제대로 안 먹힌다. 죽을 때가 다 됐나벼.”

“아유,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방학 동안은 제가 여기 머물 테니까 두 분은 걱정 마세요.”     

  

마적과 마순은 미호의 방문에 얼굴이 밝아졌다. 요괴와 도깨비들이 다시 와도 문제없을 것처럼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미호는 시장에서 사 온 팥죽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그리고 교자상 다리를 펴고 두 그릇을 올렸다. 숟가락을 받아든 마적과 마순은 동치미와 함께 팥죽을 먹기 시작했다.      


“오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가, 우리 딸이 사 온 거라 그런지 팥죽이 입에서 사르르 녹네 녹아.” “이제 어느 녀석이 와도 하나도 안 무섭겠어. 허허허.” 구마적과 강마순이 죽을 넘길 때마다 두 사람의 이마 주름살이 실룩거렸다. 미호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시계가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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