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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Jan 20. 2023

안녕, 도깨비(22화)

#22. 냥이들과 즐거운 한때

금방 내 앞을 지나갔던 녀석들은 새끼 고양이 두 마리였다. 밖에 나갔던 아이들이 들어올 때 따라 들어온 모양이다. 나는 놀란 가슴을 겨우 쓸어내렸다. 그리고 문을 열고 고양이들이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했다.      


내 비명에 놀라 뛰쳐나온 아이들도 새끼 고양이들을 확인하고 나서 안도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바깥에 있는 고양이들이 집안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신경 써 줄 것을 당부했다.   

   

“저 아이들은 야생에서 살던 아이들이라 위생적으로 깔끔하지 못해. 그리고 흙이 잔뜩 묻은 발로 집안을 돌아다니면 집이 더러워지잖아. 알았지?”


아이들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고양이를 집안에서 키우자는 소리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미리와 바리는 고양이를 유독 좋아했다. 시골집만 오면 녀석들 하고만 놀았다. 그렇다 보니 고양이들도 아이들을 졸졸 따라다녔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기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는 대상에는 끌리는 법인가 보다. 언제나 붙어 다니던 아이들과 고양이들이 나 역시 싫지 않았다. 오히려 반려묘를 키우게 해달라고 하지 않는 아이들이 고마울 정도였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은 일찍부터 마당으로 나가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고 있었다. 저희들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고양이들 밥은 빼먹지 않고 챙긴다. 고양이들은 사료를 주는 아이들에게 착 달라붙어 있다. 바리는 사료를 할짝거리며 먹고 있는 몸집이 가장 작은 새끼 고양이의 머리와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녀석도 나쁘지 않은지 가만히 있었다.      


아이들과 고양이들의 즐거운 한때였다. 몇 발짝 뒤에서 그 한때를 지켜보던 나 역시 즐거웠다. 아이들이 동심을 지키는데 이보다 좋은 경험은 없으리라. 그리고 이다음에 커서도 지금의 기억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를 바랐다. 고양이들 역시 마찬가지고.      


조용히 작업실로 들어온 나는 노트북을 켜고 ‘신 서동요’ 마무리 집필을 계속했다. 이제 원고지 100여 장 정도만 채우면 탈고할 수 있을 것 같다. ‘아, 이 지난한 작업도 끝이 보이는구나!’     


30여 분 동안 쓰고 쉬다를 반복했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하는 게 글쓰기 작업이기 때문이다. 잠시 짬을 내 미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 건강이 어떤지 물어볼 참이었다. 미호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이번에는 장모에게 전화를 바꿔 걸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신호만 계속 갈 뿐 장모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장인어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인어른은 전화를 금방 받았다. 누워 있던 모양인지, 자다 깬 모양인지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아버님, 아침은 드셨어요?”

“미리 아범이구나. 그래 미리 어멈이 해다 줘서 먹었네. 그런데 어쩐 일로?”

“미리 엄마도 그렇고, 어머님도 그렇고 전화를 안 받아서요. 혹시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동네 목욕탕에 갔어. 모녀가 모처럼 오붓하게 탕에 들어가서 몸 좀 지지고, 서로 등도 밀어주고 하라고 그랬네.”

“아, 그러셨군요.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그건 그렇고, 아버님 건강은 좀 어떠세요?”

“나야 늘 그렇지 뭐. 나이가 들어 그런지 자꾸 기력이 떨어져.. 하루하루가 달라...”     


구마적의 컨디션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기 때문에 아내와 딸을 온종일 집에 붙어 있게만 할 순 없었다. 외출도 하고, 쇼핑도 하고, 외식도 하면서 지내기를 구마적은 원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방학에도 쉬지 못하고 병간호를 와준 것만으로 마적은 뜨거운 효심을 느꼈다. 


목욕을 마친 마순과 미호는 근처 분식집을 찾았다. 미호는 어릴 적 마순과 목욕을 마치고 나면 항상 근처 분식집으로 갔다. 떡볶이와 김밥, 탄산음료를 먹는 것이 거의 통과의례였다. 목욕탕과 분식집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다. 분식집 문을 열고 들어간 모녀는 출입문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았다. 

    

분식집은 그대로였지만, 그사이 주인은 여러 번 바뀌었다. 마순과 미호도 처음 보는 사장이 앞치마를 주섬주섬 걸치며 주문을 받았다.      


“여기, 순대랑 떡볶이 1인분씩만 주세요.”     

주문을 마친 미호는 마순을 바라봤다. 주름진 이마와 얼굴을 보니 왠지 가슴 한쪽이 아리고, 코끝이 찡했다. 두 사람 모두 세월의 무게를 견딜 순 없었다. 미호는 살며시 마순의 손을 만지며 넋두리하듯 말을 꺼냈다. 

     

“우리 엄마 젊었을 땐 참 곱고 이뻤는데.”

“음마, 그람 시방은 안 이쁘단 소리냐?”

“아니 아니야. 지금도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마순은 딸 미호의 눈가가 촉촉해졌음을 알아차렸다. 마순 역시 어느덧 어른이 돼 결혼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은 미호가 대견했다. 마순과 미호는 저마다 솟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출입문 유리 밖을 내다봤다. 문밖에는 하얀 눈이 송이송이 길가로 떨어졌고, 그 길 위로 리어카를 끌고 가는 폐지 노인이 보였다. 우체부 오토바이가 그 옆을 무심히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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