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재료의 정체는 사랑이 담긴..
나는 아이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도깨비가 타온 비행접시에 들어갈 연료는 바로 ‘마’라고. 아이들은 한목소리로 “마? 그게 뭐예요?”라고 물었다.
“산에서 자라는 식물인데, 건강식품으로 많이 쓰이는 거야.”
“그런데, 그걸 비행접시 연료로 쓴다고요?”
“그렇다니까.”
“그걸로 비행접시가 뜰 수 있어요?”
나는 왜 ‘마’가 비행접시 연료로 가능한지 다시 설명했다. 도깨비가 타고 온 비행접시 연료에는 카트 휠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인 ‘사랑’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내가 쓰고 있는 소설 ‘신(新) 서동요’에 나오는 것처럼, 마는 사랑의 촉매제로 쓰일 수 있다고 믿었다.
장과 선화공주를 이어준 것이 바로 ‘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를 캐다 액체로 만들어 연료 투입구에 넣는다면, 엔진을 작동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얘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줬고, 아이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바리가 말했다. “아빠, 그럼 어서 마를 캐러 산에 가요.” 바리는 금방이라도 옷을 입고 산으로 갈 작정이었다. 나는 한껏 흥분한 바리를 자리에 앉혔다. “지금은 한겨울이야. 어디 가서 마를 구할 수 있겠어. 설사 발견한다고 해도 꽁꽁 얼어붙은 땅을 파서 마를 캐기란 쉬운 일이 아니야.”
내 말을 들은 바리는 풀이 죽었다. “그렇겠네요..” 미리도 기운이 잔뜩 빠진 듯했다. “그럼 할 수 없이 따뜻한 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겠네요.”
나는 아이들을 다독였다. “걱정마. 3월이면 봄이야. 얼마 남지 않았다구. 그것보다 연료로 쓰일 재료를 찾아냈다는 게 중요하지. 안 그래?” 그제야 아이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음 날 나는 도깨비가 있는 오두막을 찾았다. 가서, 전날 아이들에게 설명한 연료의 재료를 소개했다. 내 말을 들은 도깨비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생각을 해내다니. 이무기, 넌 역시 천재 작가야!”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도깨비가 자기 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것에 나 역시 흐뭇했다. 도깨비는 내게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비행접시 수리는 거의 끝났다. 문제는 봄이 될 때까지 도깨비의 신분이 발각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그 부분을 신신당부했다.
“한순간도 방심하면 안 돼. 네가 둔갑술을 쓸 순 있지만, 언제 어떻게 위기가 찾아올지 모르니까. 만약 다른 사람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그땐 영영 넌 카트휠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몰라.”
도깨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깨비가 낮잠을 자는 동안 나는 옆을 지켰다. 그동안 비행접시를 수리하느라 밤잠을 설쳐 그런지 금세 곯아떨어졌다. 무슨 좋은 꿈을 꾸고 있는지 도깨비는 자면서 계속 미소를 지었다. 자기가 살던 별로 돌아가는 꿈이라도 꾸는 걸까.
도깨비는 꽤 오래 잤다. 처진 눈꺼풀과 주름진 이마를 내려다보니 왠지 녀석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른 채 단순히 오감만 느끼며 사는 삶이란 어떤 기분일까. 도깨비가 무사히 카트휠로 돌아간다면 ‘사랑’이란 감정을 아는 최초의 외계인이 될 것이다.
도깨비는 오후 5시쯤 눈을 떴다. 입을 벌리며 크게 하품하는데 입 안이 다 보였다. 입 안에서는 깨소금 같은 고소한 냄새가 풍겼고, 긴 혓바닥은 오디를 한 주먹 먹은 것처럼 진보랏빛이었다. 이빨은 윗니와 아랫니 두 개씩이었고, 송곳니와 어금니는 보이지 않았다.
“이무기, 내가 얼마나 잔 거야?”
“두 시쯤 잠들었으니 세 시간 정도?”
“정말, 내가 그렇게 오래 잤다구?”
“그게 다인 줄 알아. 잠꼬대까지 하던데. 도깨비랑 싸우는 꿈을 꾸는지 기합 소리도 내고 장난 아니었어.”
“헐. 별일이군. 안 하던 잠꼬대를 다 하고. 피곤하긴 했나 보네. 그나저나 덕분에 오랜만에 달게 잤네. 고마워.”
도깨비가 잠에서 깬 뒤 나는 아이들 저녁을 차려 주기 위해 오두막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주머니 속에 동그란 무언가가 잡혔다. 도깨비에게 주려고 가져왔던 막대사탕이었다.
“내 정신 좀 봐. 이걸 그냥 가져왔네. 하는 수 없지. 내일 다시 가져다줘야지.”
나는 주머니 속 막대사탕 두 개를 만지작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미리와 바리가 TV 삼매경에 푹 빠져 있었다. 내가 집에 없어도 알아서 잘 놀고 있는 아이들이 고마웠다. 아이들이 잘 있는 걸 확인한 뒤 부엌으로 갔다. 쌀을 씻어 앉히고, 압력밥솥에 불을 댕겼다.
밥이 되는 동안 점심 먹은 설거지를 하려고 고무장갑을 끼었다. 그리고 싱크대에 연결된 수도꼭지를 틀려는 순간, 욕실 안에서 정체불명의 물체가 움직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정체불명의 물체는 살아 있었고, 한 마리가 아니었다. 섬뜩한 기분에 머리가 쭈뼜 섰다.
나는 수도꼭지를 틀려다 말고 살금살금 욕실 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때였다. 욕실 안쪽에서 검은 물체 한 마리가 쏜살같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순간 당황한 나는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으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