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도깨비(20화)
#20. 뭐? 비행접시 연료를 찾았다고?
나는 도깨비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무슨 일인 건지 말도 하지 않고, 침울한 표정이 같이 있는 내내 측은해 보였다.
“도깨비, 무슨 고민이 있으면 말을 해. 말을 해야 알지, 그렇게 시무룩하게 있으면 사람 걱정되잖아.”
“비행접시에 들어갈 연료 때문에 그래. 어떤 연료를 구해야 기체가 뜰지 통 모르겠는데, 어렴풋이 답이 보이는 것 같긴 해서..”
“답이 보인다고? 그게 뭔데?”
도깨비는 또다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더 확실해지면 얘기를 하겠다는 말만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오두막 밖으로는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도깨비는 눈이 내리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런 날씨라면 연료를 구해도 이륙하기 어렵겠어...”
나는 옷에 눈을 잔뜩 묻힌 채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작업실에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았지만, 또다시 글쓰기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신(新) 서동요’의 결말을 지어야 하는데,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선화공주와 장이 결국 백제의 왕과 왕비가 되어 백제의 부흥을 이끌었지만, 그의 아들 의자왕은 백제를 멸망에 이르게 한 패주였기 때문이다. 의자왕의 이야기를 넣어야 할지, 아니면 무왕이 백제의 태평성대를 이루었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도깨비라면 어땠을까.’ 문득 도깨비가 떠올랐다. 언제가 도깨비가 지나가듯이 한 말이 기억났다. 도깨비의 고향인 카트휠에서 우주를 여행하다 불시착한 외계인들은 한 명도 돌아가지 못했다.
비행접시에 넣을 연료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카트휠에서 전해오는 전설에 따르면, 일반적인 성질의 연료로는 기체가 뜰 수 없었다. 뭔가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내용의 물질을 담아야 엔진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행성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은 그 물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과연 그것이 뭘까...?’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했다. 카트휠에는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가 아닐까 싶었다. 카트휠에 사는 외계인들은 모두 복제로 태어나기 때문에 조상도 없고, 부모도 없다. 그래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도 그들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단순히 육체적 고통과 평범한 감정만 느낄 뿐이었다. 아프면 울고, 기분 좋으면 웃는. 마치 어린애 같은 것이라고 할까.
나는 또다시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면 되지 않을까? 예를 들면 사랑, 우정, 배려, 이성 같은 인간만이 가진 특유의 감정 말이다.
“그래, 맞아. 그거였어!”
나는 갑자기 흥분하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아유 참. 내가 왜 그걸 몰랐을까. 그렇게 쉽고도 간단한 게 있었는데 말이야. 이젠 됐어. 됐다구.”
나는 작업실에서 혼자 꽥꽥 소리를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 소리에 놀랐는지 옆방에 있던 미리와 바리가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아빠,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요? 너무 시끄러운 거 아시나요? 지금 밤 11시야!”
“앗. 미안, 미안. 미안해요, 어린이들. 아빠가 지금 굉장한 사실을 알아낸 것 같아서 말이야.”
아이들은 그게 무언지 궁금하다는 듯 작업실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두 아이를 작업실 한쪽에 앉히고 조목조목 설명하기 시작했다.
“도깨비가 카트휠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어.”
아이들의 눈이 갑자기 동그래졌다. “정말요? 그게 뭔데요? 어서 말씀해 주세요.”
나는 아이들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재빨리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고 나서 입을 열었다.
“도깨비가 비행접시를 띄우려면 연료가 필요하거든.”
미리가 말을 받았다. “그건 저희들도 들었어요. 그런데 그 연료를 구하기 어렵다는 거잖아요.”
“그래. 그런데 내가 조금 전 그 연료로 쓰일만한 재료가 떠올랐다구.”
이번에는 바리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우와. 아빠, 그게 진짜예요? 그게 뭔데요?”
나는 아이들을 번갈아 쳐다보면 히죽히죽 웃었다. 아이들은 몸이 달았는지 어서 대답해 달라고 졸랐다. 나는 천천히 비행접시에 투입할 연료의 재료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침을 ‘꼴깍’ 삼긴 채 내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