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오진환 경감에게 일어난 일
2월로 접어들면서 낮 기온이 올라갔다. 며칠 전만 해도 연일 영하권이던 날씨가 줄곧 영상을 유지했다. 오진환 경감은 책상 위 노트북을 뚫어지도록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허리를 뒤로 젖히며 두 팔을 쭉 추켜올렸다. 어찌나 기지개를 크게 했는지 의자가 뒤로 넘어질 뻔했다.
오 경감은 하품도 길게 한번 하고 나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출입문을 밀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요즘 무왕산에서 심마니가 봤다는 도깨비 얘기에 골몰해 있었다. 요즘 세상에 무슨 귀신이고, 도깨비 타령인가. 하지만 도깨비가 나타났다는 오두막은 마음 한구석에 걸렸다. 작년 연말 이무기를 만났을 때 뭔가 석연치 않다는 느낌을 직감했던 터였다.
‘분명히 뭔가 있어. 그런데 그 뭔가가 뭔지 모르겠단 말이야..’ 오 경감은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흡연실 안에는 먼저 온 김석환 경장이 담배를 맛있게 피우고 있다가 오 경감을 보고 인사를 건넸다.
오 경감은 “순찰 나갈 시간 아닌가”라고 물었고, 김 경장은 “네, 요놈만 피우고 나갈 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김 경장은 오 경감이 담배를 피워 무는 동안 눈치를 살피며 말을 걸었다.
“경감님, 그런데 그 얘기 들으셨어요? 무왕산에 도깨비가 나온다는?”
“민원실이랑 정보계에서 나온 얘기는 나도 들었네. 그런데 요즘 세상에 도깨비가 어딨 나. 산짐승을 잘못 본 거겠지.”
“그렇죠.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도깨비가 있겠어요. 외계인이면 몰라도.”
“외계인?”
“UFO 타고 다니는 외계인 말이에요. 이따금 ‘서프라이즈’ 같은 프로그램에 나오잖아요. 물론, 확인된 바는 없지만.”
“도깨비나 외계인이나 괜히 헛소문만 돌면 민심만 흉흉해지니까 김 경장도 조심하라고.”
김 경장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주섬주섬 모자를 고쳐 썼다. “이제 순찰 나갈 시간입니다. 경감님 수고하십쇼.” “그래, 고생하게.”
오 경감은 멀어지는 김 경장의 뒷모습을 보면서 두 번째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 한동안 ‘도깨비’와 ‘외계인’이란 단어를 중얼거렸다. 김 경장이 탄 순찰자가 경찰서 정문을 향해 빠져나갔다. 오늘 순찰지역은 이무기가 사는 동네였다.
운전대를 잡은 박 순경의 손등에 여러 개의 힘줄이 튀어 올라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김 경장은 박 순경에게 “천천히 가자”라고 말했다.
담배 두 개비를 핀 오 경감은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의자에 앉아 노트북에 ‘도깨비’와 ‘외계인’을 검색했다. 도깨비와 관련해서는 드라마부터 웹툰, 게임과 노래가 검색창에 나열됐다. 또 외계인은 영화와 쇼핑몰, 식당 이름 등이 검색됐다. 도깨비와 외계인이 들어간 지식백과와 뉴스를 살펴봤지만, 눈여겨볼 만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오 경감은 오전 중으로 서장에게 결재받을 서류를 주섬주섬 챙겼다. 서 내에는 김 경장이 이번 봄 정기인사에서 지구대장이나 파출소장으로 발령 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김 경장도 소문은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두드러진 공적으로 빠른 승진을 했지만 거만하지 않았다. 30년 넘게 묵묵히 제 역할을 하면서 후배들의 모범이 되고 있는 그였다.
그의 어릴 적 꿈은 과학자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과학 경시대회에 나가 각종 상을 휩쓸었고, 그래서 고등학교도 과학고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고2 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며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두 번 만에 경찰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올해로 36년째 봉직 중이다.
오 경감은 나이가 들면서 과학자의 꿈을 이루지 못한 데에 서운함이 더했다. 그래서 틈틈이 대입을 준비했고, 3년 전 지방의 한 과학대학교에 들어갔다. 4년 장학금을 받고서 말이다. 오 경감은 대학에서 항공우주 산업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졸업 논문도 우주산업과 달 탐사 관련 내용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2층 서장실로 올라간 그는 복도에 걸린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고쳤다. 제복 어깨에 붙은 무궁화 두 개가 은은하게 빛났다. 흰머리가 부쩍 늘었다. 결재판에 든 서류를 다시 한번 확인한 뒤 서장실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들어오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렸고, 오 경감은 헛기침을 가볍게 한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