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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Jan 23. 2023

안녕, 도깨비(24화)

#24. 까치 까치설날

설날 아침이었다.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내고 선산에 성묘하러 갔다. 오늘은 나와 미호, 그리고 아이들까지 모두 함께였다. 무왕산 중턱 선산에는 고조부부터 부모님까지 3대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간단한 제수품을 놓고 두 번씩 절했다. 미리와 바리도 추운 입김을 쏟아내며 성묫길에 올랐다. 미호는 아이들을 건사하며 눈 쌓인 산길을 조심조심 걸어 내려갔다.      


산을 거의 내려왔을 때, 도깨비가 있는 오두막이 보였다. 미리와 바리, 그리고 나까지 모든 시선이 오두막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아빠, 오두막에 들렀다 갈 거예요?”라고 물었다. 나는 미호의 눈치를 살폈다. 미호 역시 도깨비의 정체를 이미 알아차린 듯했다.     


“당신 좋을 대로 해요. 잠깐 들렀다 가든지.” 미호는 긍정에 가까운 말을 건넸다. 아이들은 벌써 오두막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나와 미호는 오두막을 향해 뛰어가는 아이들이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게 바라보면서도 겨우내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은 아이들이 대견했다.     


네 식구가 모두 오두막에 들어갔을 때, 도깨비는 USB를 꺼내 우리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공중에 네모난 투명 패널을 만든 다음 USB를 끼웠다. 그랬더니 곧바로 3D 입체 영상이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바로 그동안 도깨비가 수리했던 비행접시 ‘야코’였다.     


도깨비는 그동안 ‘야코’를 수리했던 과정을 천천히, 그러면서 상세하게 설명했다. 미호와 아이들은 귀를 쫑긋하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도깨비가 하는 설명이 귀에 박히지 않았다. 어서 빨리 봄이 와 마를 캐러 가야 한다는 조바심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도깨비가 설명을 마쳤을 때, 나는 모두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말이야....”

“이무기, 왜? 무슨 질문이라도 있는 거야?”     


도깨비가 빤히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강 포수에게 들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야기를 들은 미호와 아이들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하지만 도깨비는 그닥 대수롭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도깨비, 넌 아무렇지도 않니? 사람들에게 들키기라도 하는 날이면 이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되고 만다고. 게다가 네 안전도 장담할 수 없고 말야.”     


나는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도깨비를 다그쳤다. 그래도 도깨비는 별 걱정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도깨비가 조용히 말했다. “솔직히 나도 걱정은 돼. 나라고 왜 무섭지 않겠어. 내가 둔갑술을 할 줄 안다고 긴장하지 않는 게 아니야.”     


도깨비의 말을 들은 미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면 좀 전에 그 웃음의 의미는 뭔데?” 미호의 질문을 받은 도깨비는 진지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봤다.      


“난 이미 여러분들에게 외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건 바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과 ‘우정’이라는 감정이야. 우리 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지. 이미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함을 느꼈어. 그리고 내 별인 카트휠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얻었지. 그러고 나니 두려움은 사라지고, 오히려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어.”   

  

우리는 그제야 도깨비가 웃은 이유를 알았다. 지구에 불시착한 이후 귀환은 차치하고,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에 얼마나 두려웠을까. 하지만 도깨비는 나와 가족들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그 과정에 사랑과 우정을 느낀 것이다. 그걸 통해 희망과 용기를 얻은 도깨비는 이제 더 이상 낯선 별에서의 나날이 외롭거나 무섭지 않았던 것이다.      


미리와 바리는 도깨비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도깨비의 주름진 손등을 어루만졌다. “도깨비, 힘내! 우리가 널 꼭 지켜줄게. 카트휠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 우리만 믿어, 알았지?”     


아이들의 응원을 받은 도깨비는 활짝 웃었다. 그리고 USB를 빼내 주머니에 넣었다. 도깨비가 의기소침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내 걱정은 어쩌면 기우에 불과했다. 미호 역시 도깨비의 적극적인 의지에 감탄했다.   

 

“도깨비,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아?”

“오늘? 글쎄 오늘이 무슨 날일까?”

“설날이야, 설날. 어제는 까치 까치설날이고, 오늘은 우리 우리 설날이라구.”

“글세, 그 설날이라는 게 뭔지 난 모르겠다.”     


나는 도깨비에게 설날을 설명했고, 그제야 도깨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복을 입은 미리와 바리가 도깨비에게 넙죽 절을 했다. 그러더니 “도깨비님, 이제 세뱃돈 주세요”라고 달라붙었다. 도깨비는 아이들의 그런 모습이 즐거운지 연신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동안 킥킥거리며 웃더니 주문을 걸어 휴대용 게임기와 보석 십자수 키링을 만들었다. 세뱃돈 대신 줄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선물을 받아 든 아이들은 도깨비에게 몇 번이나 절을 했다. 장난을 치며 좋아하는 아이들과 도깨비들 모습이 창문에 어른거렸다. 창밖에는 또다시 눈발이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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