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나는 그때 아내인 미호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미호는 3월 개학에 맞춰 새 학기 수업 계획서 작성을 위해 며칠 출근해야 한다고 했다. 장인어른의 병세는 많이 좋아졌고, 장모 역시 미호가 옆에서 살림을 도운 덕에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고 했다.
나는 미리와 바리가 방학 중에도 복싱과 줄넘기 학원에 부지런히 다니고, 틈틈이 책도 본다고 설명했다. 미호가 “다행이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은 순간, 멀리서 김 경장이 나를 향해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김 경장의 모습에 반가워 손을 들려고 하는 찰나, 그의 곁에 바닥에 쓰러진 박 순경이 보였다. 뭔가 상황이 긴박한 것 같았다. 나는 그쪽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두 사람 가까이 갔을 때 박 순경은 의식을 잃고 있은 상태였고, 김 경장은 숨을 몰아쉬며 인공호흡과 심폐 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김 경장의 입에서는 허연 입김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저도 모르겠어요. 운전 중에 갑자기 쓰러졌어요.”
“119, 119는 불렀나요?”
“네, 곧 도착할 겁니다.”
나는 심폐 소생술을 하는 김 경장 옆에 앉아 박 순경의 기도가 막히지 않게 고개를 내 무릎 위에 얹었다.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도착했다. 조용했던 동네에 사이렌 소리가 크게 울렸고, 논둑에서 낟알을 주워 먹던 산비둘기 떼가 놀라 날아갔다.
구급차에서 내린 대원들이 박 순경의 상태를 살핀 뒤 접이식 침대를 꺼내 옮겨 실었다. 박 순경은 긴급 후송됐다. 구급차가 떠난 뒤 나는 김 경장과 나란히 앉아 담배를 피웠다. 김 경장은 혼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김 경장님, 얼마나 놀라셨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저나 별일 없어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김 경장은 구급차가 달려간 방향을 바라보며 근심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김 경장은 이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며 곧 순찰차를 타고 돌아갔다. 나는 김 경장이 타고 떠나는 순찰차의 꽁무니를 바라보며 긴 숨을 내쉬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정말 별일 없어야 할 텐데.’
김 경장에게 전화가 걸려 온 건 그날 저녁 무렵이었다. 재빠른 응급처치 덕분에 박 순경은 위기를 넘겼다고 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하루 이틀 입원하면 된다는 소식을 전했다. 나는 김 경장에게 “사람 목숨 하나 살리셨네요. 박 순경한테는 김 경장이 정말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어요”라고 말했다.
김 경장 역시 안도하며 나에게 “도와주셔서 고맙다”라고 인사했다. 내가 한 건 별로 없지만, 생과 사의 길목에서 사투를 벌였을 박 순경의 안전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박 순경은 평소 지병이 없었고,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할 만큼 강한 체력을 가진 운동 마니아였다. 그렇기에 그의 갑작스러운 사고는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박 순경의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동시에 지병을 앓고 있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다짐도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돌아오는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처가에 들를 참이었다. 장모의 생신이 며칠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은 뒤 오두막으로 갔다. 도깨비는 휴대용 검색기를 꺼내 기체에 넣을 마의 성분 분석과 연료통에 마즙의 양을 얼마나 넣을지 등등을 살펴보던 중이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막대사탕 두 개를 꺼내 하나는 내 입에, 다른 하나는 도깨비의 입에 넣어주었다. 도깨비는 짧게 “고맙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목은 여전히 검색기에 쏠려 있었다. 오늘은 도깨비가 지구에 불시착한 지 딱 5개월 되는 날이었다. 이제 한 달만 있으면 도깨비는 수리를 마친 비행접시를 타고 카트휠로 돌아갈 것이다. 과연 무사히 갈 수 있을까, 나는 잠시 뭔지 모를 상념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