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재민 Apr 03. 2023

슬기로운 기자 생활 *

에피소드 21.

기자로 생활하면서 느낀 경험담을 책으로 낸 적이 있다. 3년 동안 써둔 글을 그러모아 출판사에 보냈고, 그중에 한 곳과 계약해 책을 냈다. 계약과 출간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내 원고를 보고 흔쾌히 책으로 내자고 연락이 온 곳이 없기 때문이다. 약 160곳에 원고를 투고했다. 그런데 ‘투고’라는 게, 출판사에 원고만 달랑 보내는 게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출간 의도와 목적, 대상 독자 등을 정리한 출간 기획서가 필요했다. 샘플 원고 몇 꼭지는 덤이고. 맨 마지막에 원고를 첨부하는 식으로 투고는 진행된다. 하긴 편집자들이 수없이 쏟아지는 투고 메일과 긴 글을 어찌 다 읽어보겠나. 내가 후배들의 기사를 데스킹 할 때 제목과 리드 위주로 보는 거와 차이가 없으리라.      


원고를 보낸 몇몇 곳에서는 간간이 회신이 왔다. 모두 ‘꽝! 다음 기회에’였지만, 회신만이라도 감지덕지했다. 혹시나, 하는 맘에 메일을 열어보기 전까진 얼마나 반가웠던가. 설령 ‘꽝’이 나오더라도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미 각오하고 벌인 일이기 때문이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는 일이 그렇게 설레는 건지 몰랐다. 무엇보다 내 이름 석 자가 적힌 책이 서점 매대에 놓이는 게 내 꿈이었으니. 큰 대(大) 자로 누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하는 내 책을 보는 것이 ‘남북통일’보다 더한 소원이었다. 아무튼, 책을 내고 싶다는 열정과 기대만으로 하루하루가 기분 좋았다. 오천 원짜리 로또를 사서 일주일을 설렘 속에 보내는 기분이라고 할까. 신기하게도 우울증이나 무기력도 느끼지 못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책을 쓴다는 것은 무엇을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다. 독자보다 우위에 있음을 과시하기 위함도 아니다. 책을 쓴다는 것은 무언가를 통해 자기를 극복했다는 일종의 증거”라고 했다.     


하늘의 별 따기나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로또 1등도 누군가는 하지 않는가. 어렵다고 해도 출판사와 계약하는 작가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 두드렸다. 간절하게 바라면 하느님, 공자님, 부처님, 맹자님, 테스 형, 하늘에 계신 아버지까지 도와주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아침,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원고를 보낸 출판사 중 한 곳이었다. 처음 받아본 출간 제안에 얼떨떨했다. 어안이 벙벙했고, 심장은 벌렁거렸다. 10여 분 뒤, 또 다른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이게 웬일인가. 200곳 넘게 투고해도 연락이 올까 말까 하다는데. 연거푸 걸려 오는 전화에 꿈인지 생시인지 몰랐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자가 출판(POD)으로 에세이 두 권을 낸 적은 있다. 하지만, 그것과는 차원과 성격이 달랐다. 전문 출판사가 작업에 참여해 내가 쓴 글을 옥석같이 다듬어 줄 것이기 때문에. 교정 교열은 물론, 표지와 디자인, 홍보까지 도맡아 줄 것이기 때문에. 그보다 좋은 건, 내 돈이 10원 한 장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그에 더해 계약금까지 준다는 것.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계약금은 인세에서 공제하는, 선급금 개념이었다. 하지만, 그게 어딘가.     

책 제목은 대개 출판사에서 정한다. 투고할 때 제목은 ‘가제(假題)’인데, 대개는 전문 편집자의 손을 거치면서 최종 제목이 결정된다. 그런데 당시 출판사 대표는 나더러 “생각하고 있는 제목이라도 있나요?”라고 거꾸로 물었다. 나는 “딱딱하지 않고 심플한 제목이 어울리지 않을까요?”라며 생각해 둔 제목 하나를 말했다.           

그러자 대표는 “괜찮은데요?”라고 화답했다. 물론 최종 제목은 그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작가와 출판사 대표가 서로 ‘통(通)’하는 부분이 많아 한 편으로 다행으로 여겼다. 책의 제목은 ‘슬기로운 기자 생활’로 확정됐다. 출판사에서 표지 시안 3개를 보내줬다. 나는 페이스북에 그것들을 올려놓고 지인들로부터 무엇이 가장 좋을지 설문조사를 했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시안을 선택해 출판사에 보냈다. 그리고 3명의 지인으로부터 주옥같은 추천사도 받았다.      


*     


인쇄는 파주 출판단지에서 진행됐다. 회사에 하루 연차를 출판사 대표와 함께 인쇄소를 찾았다. 명색이 내 이름이 새겨진 책이 나오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책이 어찌 나오나 궁금하기도 해서 구경차 갔다. 인쇄소에 들어가 관계자들에게 인사를 한 뒤 지하의 작업장으로 내려갔다. 직원들 모두 친절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넸다.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움에도 그들은 내 인사를 반갑게 받았다. 수북이 쌓인 흰 종이가 인쇄를 준비하고 있었다. 순백의 종이들에 곧 잉크가 칠해질 참이었다. 맨 먼저 표지가 나왔다. 곧이어 띠지가 나왔다. 대표와 인쇄소 직원들은 표지와 띠지가 잘 나왔나 꼼꼼히 살폈다.  

         

책이나 신문 인쇄 과정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나는 그 모든 광경을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담았다. 한복을 입은 내 사진이 새겨진 띠지와 표지를 보니 낯설고 어색했다. 동시에 가슴 뭉클하고, 울컥했다. 첫 아이가 세상에 나오던 날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탯줄을 직접 끊어주던 순간의 기분을 세상에 막 나온 내 책을 보고 새삼 느꼈던 순간이다.      


누군가는 ‘인쇄소에서 알아서 찍고, 알아서 서점에 보내고, 알아서 팔걸, 수고롭게 그 먼 데까지 갔느냐’라고 했다. 내 마음은 달랐다. 내 새끼가 세상에 나오는데 아내만 산부인과에 보내놓고 알아서 낳으라는 소리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한 글자 한 글자 새겨진 판이 인쇄 틀에 들어가고, 곧이어 인쇄기가 굉음을 일으키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본문이 인쇄되기 시작했다. 1500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 위한 분만을 알렸다.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가 마치 아이가 태어날 때 내는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내 책은 세상에 나왔다.   

   

서울의 유명서점을 비롯해 지역의 서점 매대에 내 책이 선을 보였다. 드디어 내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대부분의 초보 작가가 그렇겠지만, 나 역시 초반 구매자는 가족과 주변 지인들이었다. 한두 달 만에 2쇄, 3쇄를 찍고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면 금상첨화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책이 나오고 얼마 안 지나 서울 광화문 K 문고를 찾았다. ‘주목 신간 에세이’ 코너에서 내 책 ‘슬기로운 기자 생활’을 만났다. 대한민국 대표 서점이라고 불리는 곳에 위풍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매대 위에는 다섯 권이 있었다.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옆에서 책을 정리하던 직원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직원은 그 책의 작가가 나인 줄 모르는 눈치였다.


기념사진을 찍고 난 뒤에도 나는 매대 주변을 맴돌았다. 혹시 내 책을 사는 사람들이 있으려나, 하는 마음에. 신인 작가라면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다고 들었다. 그때였다. 젊은 여성이 내 책을 집었다. 그리고 천천히 한 장 한 장 넘겨보기 시작했다. 심장이 쿵쾅거리다 못해 멎는 줄 알았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가서 ‘내가 저 책을 쓴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책을 사면 멋지게 사인해 준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그런데, 아! 님은 갔다. 들고 보던 ‘슬기생’을 무심이 내려놓고는 매대 옆으로 난 작은 길을 차마 떨치고 갔다.      


그날 이후 아침마다 핸드폰으로 책을 검색해 온라인 서점 순위를 살폈다. 판매지수가 올라가면 환호했고, 떨어지면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고, 출판사에서 판매 실적을 정리한 통계표를 메일로 보내왔다. 1쇄로 찍은 1500권을 대체 언제 다 팔 것인가. 하지만 어쩌랴. 이게 현실이거늘. 내가 무슨 유시민도, 김훈도, 김영하도, 이슬아도 아니거늘. 포기하지 말고 쓰리라. 그러면 언젠가 나도, 그들처럼 전 국민의 신망을 받는 작가의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책을 낸다는 건 ‘무형의 내 영혼을 유형화하는 작업’이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합니다. 다른 것에 눈독을 들이고, 함부로 먹었다가는 반드시 탈이 나기 때문입니다. 기자들에게는 기사가 솔잎입니다. 속일 생각도, 속을 생각도 하지 맙시다. 그런 맘을 먹는 순간,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칠 게 뻔하니까요. 어쩌면 다시는 나무에 기어오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먹던 솔잎 먹으면서 아름다운 나방이 되는 날을 꿈꾸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요? **    


*류재민『슬기로운 기자 생활』(푸른 영토, 2023) 제목 인용

**앞의 책 221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