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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Apr 23. 2023

방황의 끝에서

에피소드 26.

“영지가 왔대네?”

“그려, 나도 들었네.”

“인저 아주 들어온 거랴?”

“거야 모르지. 영지 애비가 변했으니 두고 봐야지 않겄어?”     


영지 누나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동네 사람들은 이런저런 말들로 수군거렸다. 누나가 집을 나간 다음 점백이 할머니, 즉 누나의 할머니는 머리를 싸매고 누워버렸다. 누나의 아버지도 곧 집을 나갈 거라는 소문이 온 동네에 파다했다. 그러나 아저씨는 누나가 돌아오는 날까지 집에 있었다. 자리를 보전하고 누운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살피며 밤을 새웠다.      


“영지도 돌아왔으니 그 집은 참말 다행이여.”         

“그래요. 근디 그렇게 말을 잘하던 애가 왜 말을 못 할까?”

“그야 내가 어찌 알겄나. 때가 되믄 하겄지.”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는 말을 이불속에서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나는 언제고 누나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늘 불안해하던 누나의 모습이 어린 마음에도 꽤나 안쓰러웠나 보다.      


“영지 누나는 왜 툭하면 가출하는 거야? 엄마가 없어서 그러는 거야?”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부모님에게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통통한 내 볼을 가볍게 꼬집으며 “나도 몰라”라고 했다. 아버지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심란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이 잘 되길 바랄 뿐, 그뿐이었다.            

*

집에 돌아온 누나는 많이 변해 있었다. 누나는 손수 빨래하고, 밥도 지었다. 아저씨는 마음을 다잡고 착실하게 일하러 다녔고, 점백이 할머니 병세도 호전됐다.      


그 무렵, 나는 영지 누나네 감 색깔이 변하는 걸 알아차렸다. 조금만 더 지나면 맛있는 홍시를 맛볼 수 있겠다 싶었다. 입안에선 벌써 군침이 돌았다. 몇 주일 전 말복이 지났지만, 날씨는 여전히 더웠다. 매미들도 힘차게 찌르르, 소리주머니를 문지르던 한때였다.     


“영지 누나, 어디가?”

다리를 절면서 어디론가 가는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나의 부름에 누나는 뒤를 돌아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으응, 저어기.”

누나는 건넌 마을 쪽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예전보다는 말이 늘었고, 짧은 대답은 곧잘 했다. 발음은 정확하지 않았지만, 전혀 말을 못 할 때와 비교하면 훨씬 나아졌다.      

“담배, 담배 사러.”

“아, 누나네 아저씨 담배 사러 가는구나.”

“응.”     


나는 누나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누나는 금방 예전처럼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누나는 그해 가을부터 사고 전처럼 말이 돌아왔다. 점백이 할머니는 자리에 누운 채였지만, 손녀의 회복에 베갯잇을 적셔가며 울었다. 누나의 아버지는 신발 공장에 경비로 취직했다. 아저씨와 같이 잠깐 미장일을 다니던 영수 아버지가 자리를 마련해 줬다. 영수 아버지의 먼 친척뻘 되는 이가 그 공장의 간부로 왔다고 했다. 그래서 두 아저씨는 주야간 교대로 경비 일을 시작한 것이다.      


누나의 아버지는 고정 수입도 생기고, 딸이 말을 되찾아 한결 부담을 덜었다. 그래도 마음 한쪽 구석에는 병상의 어머니와 아직은 자신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딸이 걸렸다.      

*     

낮은 많이 짧아져 있었다. 대여섯 시밖에 안 됐는데 등유산 자락은 이미 땅거미가 드리워져 있었다. 아저씨는 조용히 누나를 불러 앉혔다. 두 사람은 감나무 아래 평상에 앉았다. 두 사람이 오붓이 마주 보고 앉은 것도 실로 오랜만이었다.           


“영지야, 너 저 산 임자가 누군지 아냐?”

“몰라요.”

“서울 사는 돈 많은 어르신 거라고 그러더라. 근데 옛날엔 말여, 저 산이 이 애비 할아버지 거였다. 너한텐 증조부지. 땅도 많고, 인심도 좋은 양반이셨지. 내가 어렸을 적에는 동네 꼬마 녀석들이 저 산에 올라가 전쟁놀이도 하고, 나뭇단으로 집 모양을 만들어 놀았다. 그 안에서 한밤중까지 자다가 온 동네 사람들이 횃불 들고 산을 죄다 뒤지던 때도 있었지. 근데 늬 할아버지가 노름판에 손을 댔다가 유산으로 받은 땅이며, 돈이며, 저 산마저 날려버렸지 뭐냐. 그러니 식구들은 얼마나 속이 터졌겠냐. 그때부터 할머니가 화병이 드셨다. 이 애비는 학교도 못 다니게 됐지. 그러니 이날 이때까지 무식하게 산 겨. 늬 할아버지, 할머니랑 내 속 어지간히 썩이고 가셨다. 한때는 원망도 많았지. 공부는 하고 싶은 디 학교 갈 돈은 없으니까. 늬 할머니가 시장통에서 뼈 빠지게 고생해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였으니까. 나랑 할머니가 물려받은 건 노름빚밖에 없던 거여. 몇 년 동안 할머니랑 남의 논 빌려 농사짓고, 가끔 장에서 옷 떼다가 팔고 해서 그 빚 다 갚었어. 늬 엄마도 그때 시집와 고생 엄청했지. 읍는 집에 시집와서 죽어라 고생만 하다가….”      


아저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누나는 울고 있었다. 아저씨도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고 있는 듯했다.  “너도 이 애비 원망 많이 했을 거다. 암만, 안 했다면 그짓말이지. 너한테 이 애빈 천하의 몹쓸 애비여.”

“아, 아니에요.”

“아니긴, 뭘 아녀.”

아버지는 딸의 손을 어루만지며 그렇게 사과를 건넸다. 그리고 마음에 담아뒀던 말을 꺼냈다.

“영지야, 낼부턴 다시 학교가. 사람은 어쨌거나 배워야 하는겨. 이 애비 이제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 집 걱정일랑 한 개도 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는겨.”

누나는 아버지의 말이 고마웠다. 부녀의 대화는 그동안 쌓였던 갈등의 골이 서서히 씻어냈다.      


결국 아이는 당신이 노력한 만큼은 한 부모의 죽음과 화해할지 몰라도, 영원히 아버지나 어머니 없이 자라나게 될 것이다. 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커야 함을 의미하며, 처음에 받은 정신적 충격 외에도 늘 불리한 조건들을 안고 살아야 함을 뜻한다. 그렇게 되면 학교 운동회나 수상식의 의미도 달라지고, 생일과 크리스마스를 맞을 때마다 늘 빈자리를 느낄 것이다. (중략) 큰 위기는 아이에게 평생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위안이 되는 사실은, 상황이 좋지 않은 경우에도 어떤 변화들은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는 위기를 통해 보다 독립적인 사람으로, 남을 더 배려하는 사람으로, 더욱 강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리처드 템플러 지음, 이문희 옮김『부모잠언』개정판 (세종서적, 2013) 305~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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