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두 몰러. 집에 오다 보니께 마을 어귀서 혼자 절뚝거리매 걸어 가드라고. 갈 디가 없는 거 같어서 내가 데려왔네. 밤이 늦었잖어.”
“아이고. 그래도 그렇지. 어떤 앤 줄 알고 불쑥 데려와, 데려오긴.”
청양댁은 남편을 향해 구시렁거렸다. 대문 간 앞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계집애가 영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추레한 모양새가 딱했는지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곤 이내 부엌에 들어가 찬밥을 내왔다. 반찬은 무장아찌와 두부조림, 신김치가 전부였다.
“밥도 안 먹은 거 같은디,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라.”
누나는 잠시 눈치를 보더니 금세 수저를 들고 밥을 떴다. 물에 밥을 말아 두 그릇을 뚝딱 비운 영지는 길게 트림을 했다. 그때 영지 누나는 김 씨 아저씨를 만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날 밤 영지 누나는 시원한 냉차도 마시고 나서 곯아떨어졌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도 누나에겐 자장가처럼 조곤조곤 들려왔다.
다음 날 아침, 누나가 잠에서 깼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저씨 부부는 일찍부터 일하러 나간 모양이었다. 누나는 부스스한 눈과 볼을 비비며 수돗가로 걸어갔다.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에 물을 받아 펌프 안에 마중물을 부었다. 그리고는 서둘러 펌프질을 했다. 물은 금방 쏟아졌다. 세수를 마친 누나는 빨랫줄에 걸린 수건에 얼굴을 닦은 뒤 마루터기에 앉았다. 마루 한 귀퉁이에 청양댁이 차려놓고 나간 아침 밥상이 상보에 덮여 있었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누나에 마루에도 이처럼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누나는 엄마가 차려주던 밥상이 떠올라 갑자기 눈물이 담뿍 맺혔다.
“아직도 밥 안 먹었냐? 거기 차려 놨구먼?”
청양댁이 대문 안으로 들어서며 그대로 놓인 밥상을 보며 말했다.
“으으? 흐흐흐….”
그제야 누나는 조심스럽게 상보를 걷었다. 밥공기에는 흰쌀밥이 소담하게 담겨 있었는데, 온기는 남아 있었다. 밥을 먹는 누나를 바라보는 청양댁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청양댁은 누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몇 해 전 사고로 잃은 아들 만수가 떠올랐다. 만수는 나이 오십이 넘어 얻은 아들이라고 ‘쉰 동이’라고 불렸다. 쉰 동이 만수는 중학교 1학년 때 소풍을 갔다가 타고 가던 배가 침몰하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만수를 비롯해 생때같은 백여 명의 아이들이 배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했다. 당시는 선박 내에 CCTV도 없었고, 침몰 원인 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정부와 선박업체를 상대로 지난한 소송을 벌였지만, 원인 규명도, 처벌받은 사람도 없었다. 아무런 사과도 없이 사고는 여전히 바닷물 속에 잠겨 있었다.
청양댁은 만수를 낳기 전에도 임신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몇 달 만에 유산했다. 그 뒤 10년 만에 얻은 자식이 4대 독자 만수였다. 동네 사람들은 부부 금실이 좋고, 심성도 좋아 하늘이 감동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하늘의 장난은 너무도 잔인하고 끔찍했다.
만수의 죽음은 청양댁이나 김 씨에게는 삶의 의지를 꺾어놓은 일대 사건이었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김씨는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 술을 마시고 아무나 붙잡고 행패를 부릴 때도 있었고, 주먹을 날려 구치소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그래도 김 씨 곁에는 청양댁이 묵묵히 삶의 무게를 견디며 버티고 있었다. 만수가 죽고 5년이 흘렀다. 김씨나 청양댁에게 이제 만수는 세월의 흔적으로 가슴 한구석에 묻혀 있었다.
“그 애도 살아있으면 저만했을 건디…”
청양댁은 들리지 않는 소리로 혼잣말을 하고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누나는 밥그릇을 비우고 마당 가운데로 걸어갔다. 빨랫줄에 걸린 양말을 걷었다. 마르지 않은 양말은 축축했다. 누나의 발소리를 들은 청양댁이 부엌에서 나오며 “어디, 가려고?”라고 물었다.
청양댁을 바라보는 누나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하룻밤이지만, 베풀어준 정이 고마웠는지 누나는 아주머니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갈려고 그러냐? 갈디는 있고?”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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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집에서 나간 지 얼마 안 지나 청양댁은 ‘아차’ 싶었다. 무언가 빠뜨린 게 있는지 허둥지둥 밖으로 뛰어나가 누나의 향방을 살폈다. 얼마 못 가 절룩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누나를 발견했다. 청양댁은 누나를 부르면서 쫓아갔지만, 누나는 듣지 못했는지 앞만 보며 걷고 있었다. 운이 좋았는지,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김씨 모습을 본 누나가 걸음을 멈췄다. 김씨도 누나를 알아봤는지 손짓을 보냈다.
“워디 가는겨?”
김씨는 누나가 돌아간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려. 부모님 걱정하실 텐데 집에 가야지. 조심히 가거라.”
“예.”
누나는 고개를 숙인 채 짧게 대답했다.
“다시는 집 나와서 이렇게 다니면 안 된다. 뭔 말인지 알지?”
김 씨와 누나가 말을 주고받는 동안 청양댁이 멀리서 두 사람을 발견했다. 청양댁은 있는 힘껏 “아야”하고 누나를 불렀다. 이번에는 누나가 뒤를 돌아봤다. 김씨는 영수네 집 자리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청양댁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잠깐만 있어 봐라. 아줌마가 너 부르는 것 같은디.”
무슨 영문지 모르는 누나는 덜컥 겁이 났다. 무슨 잘못이라도 했는지 머리가 쭈뼛 서서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간신히 누나를 붙잡은 청양댁은 손목을 잡자마자 자리에 푹 주저앉았다.
“에고, 숨 넘어 가겄네. 다리도 절믄서…어쩜…빨리도 가네.”
청양댁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누나의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청양댁은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누나에게 건넸다. 시계 줄도 없고, 유리알에 흠집이 많이 간 동그란 모양의 시계였다. 누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제야 누나는 스르르 긴장이 풀렸다.
“어제 자다가 니 주머니에서 빠진 건디, 내가 아까 깜박하고 못 줬어.”
누나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그 시계는 누나가 초등학교 졸업식 때 엄마가 졸업 선물로 사준 거였다. 그것은 엄마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걸 잃어버릴 뻔했으니, 얼마나 고마웠을까. 누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한동안 울었다. 청양댁은 울고 있던 누나를 말없이 꼭 안아줬다. 청양댁의 옷에서 엄마 냄새가 났다.
“집으로 가거라. 엄마랑 아빠랑 얼매나 기다리겄어. 알었지?”
청양댁은 울먹이는 소리로 누나에게 신신당부했다. 누나의 눈물을 서서히 멈췄다. 눈물을 닦으며 누나는 김씨 부부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집이 꼭 들어가?”
부부는 입을 모아 멀어져 가는 누나에게 외쳤다. 누나는 가다 돌아서서 또 한 번 고개를 깊게 숙였다.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누나에게 날씨는 매우 덥게 느껴졌다.
한때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 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한 적이 있어요. 그 시절의 우리는 참사의 당사자였지만 어른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세상이 더 이상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세상은 시련을 겪은 누군가가 그걸 훌륭하게 극복해내야, 그제야 그 사람을 바라봐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