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 문구’.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바로 앞에 있던 문구점. ‘조영’은 몇 학년 때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와 같은 반 친구이기도 했다. 조영 문구에는 문구류만 아니라 온갖 잡동사니를 다 팔았다. 체육복과 실내화, 과학 준비물, 문제집을 팔았다. 뿐만 아니었다. 쫀드기와 쫄쫄이, 아폴로 같은 불량식품을 비롯한 과자와 컵라면, 꼬치 어묵을 팔던 만물상이었다.
하지만 당시 코흘리개 아이들의 눈길과 발길을 끈 건 단연 전자오락게임. 문구점 사장인 조영 아빠는 허름한 헛간을 개조해 동네 최초의 ‘오락실’을 만들었다. 게임기는 3대가 전부였다. 갤러그, 너구리, 테트리스. 문구점은 점심시간마다 오락하러 온 아이들로 붐볐다. 줄이 얼마나 길었는지 점심시간 내내 줄만 서다 돌아간 아이들도 있었다.
하교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문구점 뒤편에 마련한 간이 오락실에서 저녁이 다 되도록 ‘뿅뿅’ 거리는 소리에 혼이 나갔다. 조이스틱을 이리저리 흔들고, 동그란 버튼 두 개를 번갈아 가며 누르면서. 동전이 떨어진 아이들은 툴툴거리며 떠났다. 그래도 못내 아쉬운 아이들은 버스표를 친구들에게 팔아 오락을 계속했고, 집까지는 걸어갔다.
우리는 누구보다 조영이 부러웠다. 문구점 아들이니까, 언제든 공짜로 오락을 할 수 있을 테니까. 한 번은 쉬는 시간에 내가 조영한테 “너는 오락을 실컷 할 수 있어서 좋겠다”라고 부러워했다. 녀석은 “그렇긴 한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라며 알 수 없는 대답을 내놨다. 그렇긴 한데, 그렇지 않다는 게 무슨 말인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의 부모님은 아이들 공부에 방해될까 봐 저녁 식사 시간 이후로는 모든 전자기기를 껐다고 한다. 숙제를 마치고, 준비물을 챙기고, 씻고, 일기를 쓴 뒤 잠자리에 드는 것이 하교 이후 일과라고 했다. 그러다 학교와 문구점이 쉬는 일요일은 조영과 동생에게 천국이었다. 부모님이 온종일 오락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핫 플레이스’였던 조영 오락실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문구점 근처에 ‘킹콩 오락실’이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조영이네처럼 문구점과 병행하는 게 아니었다. 오롯이 오락만 할 수 있는 ‘진짜 오락실’이었다. 게임기도 스무 대에 가까웠다. 보글보글과 원더보이, 1942, 올림픽, 제비우스, 더블드래곤, 스노우브로스. 트윈코브라 등등.
어떤 아이들은 오십 원짜리 동전을 동전 투입구 위에 올려놓고 순서를 기다렸다. 플레이어에게 ‘그만하라’라는 무언의 압박이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불시에 오락실을 단속했다. 단속에 걸린 아이들은 학교로 데려가 벌을 주거나 화장실 청소를 시켰다. 이것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오락실 죽돌이들은 ‘학교 단속반’이 떴을 때를 대비해 도주로를 만들었다. 그들은 선생님들이 출입문을 열었을 때 미리 만들어 둔 대피로를 통해 재빨리 피신했다.
어쩌다 한 번 들렀거나, 나처럼 오락실이 어떻게 생겼는지 처음 구경 갔다 걸린 아이들만 번번이 단속에 걸렸다. 시내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오락실은 붐이었다. 나는 그때 컴퓨터 학원을 다녔는데, 학원 옆에도 오락실이 하나 있었다. 학원이 끝난 뒤 친구들과 방앗간처럼 들락거렸던 그곳에서 나는 ‘슈퍼마리오 형제’를 만났다.
주인공 ‘마리오’와 동생 ‘루이지’는 콧수염에 멜빵바지를 입은 배관공. 이들은 거북 모양 대마왕 ‘쿠파’에게 납치된 버섯 왕국 피치 공주를 구하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버섯 괴물 ‘굼바’가 다가오면 점프해서 밟아 처리하고, ‘뻐끔 플라워’(피라니아 플랜트)를 피하고, 거북이 괴물 ‘엉금엉금’을 쓰러뜨린 뒤 대마왕 쿠파를 처단하면 ‘피치’ 공주를 구할 수 있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때 1인용으로 쿠파를 쓰러뜨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칭 ‘오락의 신’이라고 불린 친구와 편을 먹고 2인용으로 했을 때, 겨우 한 번 끝판까지 갔다. 쿠파도 내가 아닌, 친구가 물리쳤고, 피치 공주도 그 친구가 구했다.
고등학교 이후에는 오락실에 가지 않았다. 불량 학생들 아지트로 활용되는 사례가 많다 보니 일탈 장소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같은 아이들이 오락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돈을 빼앗기도 했다.
학교 측의 지도단속은 한층 강화됐고, 처벌 수위도 심했다. 당구장이 대세였던 대학가에는 PC 방이 하나둘 들어섰다.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 같은 게임이 1020 세대 최고인기였다. 그사이 동네 오락실은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났다. 요즘은 핸드폰 앱을 깔아 로블록스와 마인크래프트를 하는 시대가 왔다. 초등학생인 내 두 아이는 휴일이면 닌텐도 게임 ‘마리오 카트’에 열심이다. 사촌 조카가 놀러 왔다 두고 간 게임팩인데, 재밌다고 난리다. 딸은 ‘키노키오’, 아들은 ‘와루이지’ 캐릭터를 주로 사용한다.
얼마 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예고편을 보니 옛 추억이 떠올랐다. 아이들도 보고 싶다고 하기에 휴일에 셋이서 영화를 보러 갔다. 그 옛날 내가 푹 빠졌던 슈퍼마리오 게임과 요즘 내 아이들이 꽂혀 있는 ‘마리오 카트’를 섞어 놓은 느낌이었다.
영화가 끝난 뒤 셋은 모두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40대 중반에 10대 아이들과 30년 전 추억의 오락게임을 만나다니. 영화가 얼마나 흥미진진했던가, 손에 땀이 흥건했다. 팝콘 통은 다 비웠는데, 음료는 반이나 남았다. 나는 화장실 다녀온 사이 미처 못 본 장면을 아이들에게 물었고, 아이들은 생생하게 설명해 주면서 극장을 빠져나왔다. 속편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