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by 류재민

내가 살던 시골 동네에는 변변한 극장 하나 없었다.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40분 정도 달려야 겨우 시내 극장에 다다를 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만 되면 동생들이나 친척, 친구들과 자주 갔던 명보극장.

‘우뢰매’와 ‘우뢰용’ 시리즈부터 ‘슈퍼 홍길동’ ‘홍콩 할매 귀신’ 등 ‘영구 심형래’는 그 시절 어린이들에게 BTS급 인기를 누렸다. ‘원플러스 원’ 원조 격인 동시 상영이라도 걸리면 입이 귀에 걸렸다.


내가 본격적으로 영화를 탐닉한 건 대학 신입생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충남 천안에서 충북 청주로 통학했었다. 오전에 수업을 들으러 갔다가 오후에는 젖히고, 천안으로 돌아와 극장으로 향했다. 한 손에는 '씨네21'을 돌돌 말아 쥐고.


그 시절 천안에는 ‘명동거리’라고 있었다. 주변에 극장이 즐비해 ‘영화 거리’로도 불렸다. 나는 그 길을 밥 먹듯 쏘다녔다. 밥값으로 받은 돈을 영화표 사는데 쓴 적도 많다. 신규 개봉작 5편을 일주일 안에 다 봤을 정도였으니.


휴학 뒤 군대에 갈 무렵이었나. 짝사랑하던 여자와 영화관에 간 적이 있다. 정우성과 고소영이 주연한 영화 <비트>를 보러. 사실 난, 그 영화를 이전에 두 번이나 봤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몇 번을 본 영화라는 사실은 아무 의미 없었다. 나는 어두운 극장 안에 그녀와 나란히 앉아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를 봤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달래면서.


영화 시작과 함께 나온 정우성의 짧은 한마디에는, 그 영화의 모든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입대를 앞두고 혼란스럽고 방황했던 당시 내 맘을 대변하는 듯했던 대사. “나에겐 꿈이 없었다.”


그래, 그때 나에게는 ‘꿈’이 없었다. 무슨 일을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모든 것이 까마득했다. 그래서 도피처로 택한 곳이 군대였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낯설고 무서워 도망치듯 떠나려는 사람, 그 옆에 앉아 아무것도 모른 채 팝콘과 콜라를 홀짝이며 스크린만 쳐다보던 여자.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사람들에 떠밀리듯 극장 밖으로 나왔다. 바깥은 습도가 높고 후텁지근했다. 막 포장을 마친 아스팔트처럼 끈적한 날씨였다. 커피숍이라도 가자고 할까, 했지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차마 그녀에게 ‘안녕’이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날, 그렇게 헤어졌다.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도 명동거리는 그 자리에 있다. 다만 ‘영화관’은 모두 사라졌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생기면서 한두 곳씩 간판을 내리더니, 이제는 어느 하나 남아 있지 않다.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는 시대가 왔으니 어쩌랴. 세월의 벽 앞에서 견디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나이’와 ‘문화’ 일 것이리라.


이태 전인가. 길을 가다 대학 동창을 만났다. 어찌나 반가운지, 근처 선술집에서 낮부터 술을 마셨다. 그 친구도 대학 때 소문난 ‘영화광’이었다. 우리는 소주를 세 병 마시는 동안 영화 얘기만 잔뜩 떠들었다.

대학 시절 영화동아리에서 활동했던 얘기며,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던 신인 기형도가 서울 파고다 극장에서 소주병을 들고 숨진 채 발견됐던 얘기며, 충무로 상징이었던 단성사와 서울극장 폐점 소식까지.


그리고 술자리가 끝날 때쯤, 친구는 나와 ‘옛날 영화관’에 함께 갔던 여자의 소식을 전했다. 자기도 우연히 지인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라면서. 나는 그의 이야기를 무심한 척 들었다.


“치과의사랑 결혼해서 애 둘 낳고 알콩달콩 살 때까진 누가 그럴 줄 알았냐. 겉으론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 같아도, 저마다 남모를 사정은 하나씩 있는 거지. 산후 우울증으로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부부 사이가 안 좋아졌나 봐. 그러더니 얼마 안 가 별거했고, 결국은 갈라섰다네. 들리는 소리는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나, 재혼했다나. 사람 인생 참 알다가도 모르겠더라.”

“그래서. 그 앤 지금 뭐 하면서 산대?”

“죽었대. 자살했다고, 그러더라.”

“힘들었구나. 견딜수 없을 만큼.


친구와는 불콰해진 얼굴로 다음에 또 보자며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 건너편으로 명동거리가 보였다. 음식점과 상점의 간판에 네온사인이 하나둘 켜졌다. 약간 흔들리는 몸을 가누며 버스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 노선도에 안내문이 붙어있는 걸 뒤늦게 발견했다. ‘역 광장 앞 집회 시위로 〇〇〇번 버스는 명동거리 방향으로 우회합니다.’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입김이 따라 나왔다. 그리고는 명동거리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푸드득, 새 떼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오늘 난 한 편의 옛날 영화를 보러 왔네. 영화가 끝나면 나는 내 공간으로 돌아갈 걸세. 현실의 세계로 말일세. 여기가 바로 내 벌레 구멍일세.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회복한 공간 말일세.” **


*윤대녕 장편소설『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문학동네, 2011) 제목 인용

**앞의 책 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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