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왔을 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내는 퇴근 전인 모양이었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는지, 아니면 학원에 있을 것이다. 거실 한쪽에 있는 공기 청정기를 켰다. 그다음 베란다에 나가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문을 열었다.
찬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훅, 들어왔다. 금세 거실에 찬기가 돌았다. 환기라도 해야 했다. 그래야 밖에서 묻어온 나쁜 먼지와 오염된 공기를 털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날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친구가 모친상을 당해 조문을 갔었다. 향년 여든둘. 정정한 어르신은 뇌출혈로 쓰러졌고, 얼마 버티지 못했다. 유족은 친구까지 아들만 셋이었고, 손자 손녀가 다섯이었다. 친구의 부친은 마흔몇 살에 공장에서 일하다 화재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빈소에 차려진 액자 속 망자는 흰 파마머리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다. 말끔한 안경을 쓰고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향불을 올리고, 두 번 절한 다음 상주들과 맞절했다.
나는 친구의 형님에게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라고 위로를 건넸다. 친구는 형님께 나를 소개했고, 조문을 마친 나를 데리고 식사 테이블로 안내했다. 나보다 먼저 온 친구 둘이 일어나 맞았다. 그들은 이미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틈에 끼여 나도 술잔을 받았다. 어떻게 지내느냐, 따위의 상투적인 인사가 오갔다.
한 친구는 창업을 준비 중이라고 했고, 옆에 앉은 친구는 택시를 몬다고 했다. 창업을 준비 중인 친구에게 어떤 분야라고 물었더니 “치킨집”이라고 짧게 답했다. 요즘에 널리고 널린 게 치킨집인데 잘 되겠냐고 했더니, 차별화된 전략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는 치킨집 창업 전략을 일장 연설했다. 우선 임대료가 비싸도 목이 좋은 골라야 하고, 판매가를 높이더라도 맛이 좋아야 입소문이 난다고.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안 된다고 했다. 왜 안 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맛이 좋은 치킨을 만들기 위해선 소스가 특별해야 하고, 실패를 거듭한 끝에 자신만의 ‘특제 소스’를 개발했다고. 점포도 곧 계약을 앞두고 있고, 개업하면 한번 들르라며 영업까지 했다. 택시를 모는 친구가 소주잔을 비우며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고선 답답하다는 듯 말을 받았다.
“그 치킨집은 얼마 못 갈 거 같다.” 말을 들은 친구는 안색이 나빠졌다. 가게 문도 열지 않았는데, 초를 치는 것도 아니고 얼마 못 갈 것 같다는 악담을 들었으니. 친구는 술기운 때문인지, 흥분해서인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따졌다.
“야, 넌 격려는 못 해 줄 망정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그리고, 그런 말을 한 근거가 뭐야?”
감정선을 잘못 건드렸다 느꼈는지, 택시업을 하는 친구는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사업을 하겠다는 친구한테 그런 말 하는 게 도리는 아니란 걸 나도 알아. 근데 택시를 몰고 다녀보면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쌓이고 쌓였더라. 너처럼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나온 사람들 열에 아홉은 다 창업을 하겠다는 거야. 지금 너처럼 치킨집 한다는 사람들도 많이 봤고. 처음엔 한결같이 너 같은 계획을 늘어놓더라. 그런데 십중팔구는 몇 달 못 가 폐업했대. 그러니 무슨 차별성이 있고, 돈을 벌겠냐는 얘기야. 나도 하루하루 사납금 채우면서 빠듯하게 산다면, 니 얘기 들으니 걱정돼서 한 소리다.”
그제야 친구는 말없이 고개를 수그렸다. 자기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이. 나는 그의 빈 잔에 술을 채웠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십 년 넘게 세일즈맨으로 살았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 자식들 키운다고, 아파트 대출금 갚는다고 모아 둔 돈도 없더라. 나 같은 사람들이 가장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는 게 치킨집 아니면 커피숍이더라. 그렇게 차린 가게들이 얼마 못 가서 문을 닫는다는 것도 알아. 그래서 불안하고 겁나. 그렇다고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순 없잖아.”
“그래도 너는 치킨집 사장님 소리는 들을 거 아냐. 나 같은 택시기사들은 평생 가도 ‘아저씨’야.” 두 친구는 서로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다 화제가 내 근황으로 넘어왔다.
“나도 뭐 별반 차이 없어. 너는 택시기사니까 ‘기사님’ 소리를 듣고, 나는 기자니까 ‘기자님’ 소리를 듣는 차이일 거야. 그러고 보니, 나도 평생 사장님 소리는 못 듣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치킨집 사장님만큼은 성공해서 2호점이나 3호점을 우리한테 좀 주라고.”
셋의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맑게 들렸다. 잔을 들고 있는 저마다의 속은 소주처럼 쓰디쓸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걱정과 불안은 모두 술잔에 담아 각자의 속에 털어 넣었다.
상주인 친구가 조문객이 뜸한 틈에 우리 자리로 와서 앉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마흔, 사십 대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을까. 우리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중년이라면, 누구나 다 같은 마음으로 살지 않을까 싶어.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이 어디 있겠냐. 아직은 젊으니 열심히 흔들리고, 치열하게 꽃을 피우려고 노력해야지. 우리 앞길은 창창하니까, 쨍하고 해 뜰 날 오지 않겠냐.”
아직도 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중략) 중년이라면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숙제가 남아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알려 줍니다.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으며, 당분간 숙제 무게만큼의 고통도 던져버릴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힘이 들어도 계속해서 뚜벅뚜벅 자기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
어느 정도 환기가 끝났다고 여겼을 때, 창문을 닫았다. 창문 유리에 하얀 김이 서렸다. 서재에 들어가 노트북을 펴고 앉았다. 밀린 숙제 하듯 글을 쓸 생각이었다. 거실 공기 청정기는 빨간불이 켜진 채 씩씩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