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봄날, 어느 오전

by 류재민

나는 그때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서 국회 의사당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만리동 고개를 지나 한겨레 신문사를 지났다. 버스는 공덕동 오거리에서 정차해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건너편 에스오일 건물 외벽에 걸린 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에는 아이가 하얀 씨앗이 만발한 민들레를 손에 들고 있었고, 왼쪽에는 예쁜 글이 새겨진. 박치성 시인의《봄이에게》중 일부였다.


‘그리 조급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리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넌 머지않아 예쁜 꽃이 될 테니까’


아, 나는 글을 보고 감탄했다. 얼마나 감탄했나 눈물이 핑 돌았다.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기도 했다. 조급하고 불안했던. 그런데 시인은 내게 ‘괜찮다’라고 용기를 줬다. ‘예쁜 꽃이 될’거라며 희망도 줬다. 가만히 앉아 용기와 희망을 선물로 받았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그저 버스 의자에 앉아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봤을 뿐인데. 별안간 신났다. 시인에게 고마웠다.


그해 봄이 오기 전 겨울, 내가 사는 도시에는 눈이 참 많이 내렸다. 눈이 오면 신나는 건, 동네 강아지만은 아니다. ‘화이트 설날’에 아이들이 신났다. 모처럼 시골집을 찾은 아이들은 마당에 나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눈을 굴렸다. 나를 닮은 눈사람 하나가 길 한 옆에 세워졌고, 그 옆에 눈 오리가 줄을 섰다.


아이들은 볼이 발개질 때까지 놀았다. 나도 눈 내린 시골 풍경에 한동안 넋을 잃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논밭을 뛰놀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때 어울렸던 녀석들도 나처럼 마흔이 넘었겠지, 누군가의 아빠와 엄마가 되어 있겠지, 그리고 나처럼 이렇게 눈 오는 날 아이들과 눈싸움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있겠지, 하면서.


그날 저녁, TV에서 다큐멘터리를 봤다. 새해를 맞아 설악산을 찾은 사람들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그중 휠체어를 타고 산에 온 40대 남성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살면서, 강원도 쪽에 와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암 말기 환자였다. 7년을 투병했는데,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가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호스피스 병동에 접수해 놓고 친구들 도움을 받아 산을 찾았다고. 친구들과 함께 생의 마지막 여행길을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는 PD와 인터뷰에서 “제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마음먹기 나름이니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데, 좋은 방향으로 길이 생기지 않겠어요?”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맘이 짠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마음이 들었다. ‘단단해져야겠다’ ‘나는 살아있다, 뜨겁게 살아보자’ 독일의 시인이자 철학자 니체는 이런 말을 남겼다. “길이 험할수록 가슴은 뛴다. 인생에서 모든 고난이 사라졌을 때를 생각해 보라! 그 이상 삭막한 것이 없으리라.”


아무리 말기 암 환자를 보고 마음을 다잡고, 니체의 말을 새기면서 살아도, 막상 또 살다 보면 삭막함이 엄습함을 자주 느낀다. 그래서 흔들리는 나이가 마흔인가. 공자는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고 ‘불혹(不惑)’이라고 했건만, 나는 어찌하여 노상 흔들리며 사는 걸까.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 마주친 것이 ‘봄이에게’였다.


그래, 그 시에 나오는 민들레처럼 살자고 또 한 번 다짐했다. 다짐을 자주 하는 나이도 마흔인가. 흔들리다 다지고, 다지다 다시 흔들리는. 아침 이슬은 햇볕에 말랐고, 버스는 국회 의사당 앞에 다다랐다. 일어나 하차 벨을 눌렀다. 교통약자를 배려한 저상버스 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한발 한발 내디디며 차에서 내렸다. 봄 햇살이 따스했던 월요일 오전이었다.


마흔은 해가 저무는 쪽이 아니라 해가 떠오르는 쪽에 가깝다. 내 마흔을 오전답게 대해야 내 예순과 일흔이 오후다워질 수 있다. 당신의 마흔은 아직 오전이다. *


*김미경 지음『김미경의 마흔 수업』(어웨이크북스, 2023) 49쪽


keyword
이전 22화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