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접어들면서 20대와 30대와 달라진 것이라면 신체 변화였다. 흰머리가 늘고 머리숱이 적어졌다. 주름은 늘어나고, 무얼 먹기만 하면 배가 나온다. 새벽까지 술을 마셔도 멀쩡했던 정신은 툭하면 필름이 나간다. 정신적인 변화도 신체적 변화에 비례한다. 몸이 안 좋으니 제정신일 리가 있으랴. 심신이 이렇다 보니 삶이 재밌을 리도 없다. 행복하게 살려면 삶의 재미를 찾아야 하는데, 그 ‘재미’라는 건 어디서 찾아야 할까.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니엘 카네만’은 이런 말을 했다. ‘내 하루의 삶 속에서 기분 좋은 시간이 길면 길수록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기분이 좋을까.
언젠가 문화심리학 박사인 김정운 교수가 방송에서 한 강의를 본 적이 있다. ‘사는 게 재미없는 이 시대 남자들에게’라는 주제였다. 그는 강의에서 기분 좋은 시간을 늘리기 위해선 “내가 좋아하는 걸 구체적으로 정의하라”라고 했다. 무엇을 할 때 내 기분이 좋은지를 특정하라는 얘기다. 그 얘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난 뭘 할 때 기분이 좋은가?’
첫 번째는 지금처럼 혼자 앉아 글을 쓸 때다. 일로써 하는 글(기사)이 아닌, 퇴근 뒤 취미로서 하는 글쓰기를 할 때 나는 좋은 기분을 느낀다. 다음으로는 책을 읽을 때다. 나는 가방에 늘 한 권의 책이라도 넣고 다닌다. 출퇴근하는 KTX 안에서, 점심시간에, 퇴근 후 집에서 틈틈이 읽는다. 특히 주말과 휴일 집 근처 전망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하는 독서는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하나 더 찾아보면 운동할 때다. 산책로를 걷거나, 피트니스 센터에 가거나, 종합운동장 트랙을 몇 바퀴 뛰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땀은 비 오듯 쏟아지지만, 샤워를 마치고 나올 때 그 기분이란. 그러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결승선을 들어올 땐 무엇으로도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성취감을 맛본다. 세상이 온통 아름답게 보일 만큼. 그래서 마흔 줄에 접어든 내게 읽는 삶, 쓰는 삶, 달리는 삶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재밌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최소한 대학까지 보내고 가르치려면 더러워도 참아야 하는 나이, 언제 직장을 잃을지, 회사를 그만두면 무슨 일을 해서 먹고살지를 고민하는 나이. 나보다는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가엾은 가장이란 위치에서 40대는 늘 혼란스럽다. 재미를 찾을 겨를이 없다.
하지만 나는 재미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사소한 것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게 분명해야 기분 좋게 할 있고, 그 기분 좋은 시간이 길어야 행복할 수 있다는 얘기를 비로소 실감하고 있다.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문난 마라토너였다. 풀코스를 25회 완주하고, 트라이애슬론과 100km 울트라마라톤까지. 그가 이토록 달리기에 재미를 붙인 이유는 ‘지치지 않는 글쓰기’를 위해서였다. 글쓰기 근육뿐만 아니라 육체의 근육을 기른 것이다. 하루키는 달리기를 주제로 쓴 회고록에서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는 글을 자신의 묘비에 적고 싶다고 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지치지 않고 글을 쓰는 원동력은 바로 건강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하루에 1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적어도 달리고 있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도 된다.*
나 역시 글을 쓰는 것도, 마라톤을 하는 것도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했다면, 재미도 없을뿐더러, 기분도 좋지 않고, 행복한 시간도 길어질 수 없다. 스스로가 좋아야 하고, 재미가 있어야 한다.
글쓰기 삼매경에 푹 빠져 있으면, 저녁상 차려놓고 눈을 흘기는 아내의 살기 어린 눈빛도 알아채지 못할 때가 더러 있다. 괜찮다. 괘념치 말자.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그걸로 인해 우울 대신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잔소리와 바가지가 대수랴. 그래도 밥이 식기 전에는 일어서자. 식탁의 밥이 다 식을 때까지 노트북 앞에서, 원고지 앞에서 죽치고 있다간, 이런 묘비를 새길 수도 있으니. “끝까지 아내 말을 듣지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문학사상, 2016) 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