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막과 내리막

by 류재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특별한 곳에서 생기지 않는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달리기를 하면서 몸과 마음의 근력을 기를 수 있다. 정신이 아프면 산책을 하든, 산사(山寺)를 찾아가 영혼의 안식을 주어도 된다. 돈이 드는 일도 아니다. 의지 하나면 된다. 슬프면 울고, 힘들면 잠시 쉬어가면 된다. 그러면 어느샌가 마음이 차분해지고,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기지 않을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당장 숨이 막힐 정도로 고통스러운데 어떻게 즐기란 말인가. 피할 수 없는 고통은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설마 죽기야 할까. 철저히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그래야 그 고통의 시간이 지나갔을 때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거다. ‘살아있음’의 소중함과 간절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거다. 겨울이 추울수록, 그걸 견뎌낸 나무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리더십 전문가로 불리는 ‘존 맥스웰’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성장’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는 “시간이 아닌 에너지에 집중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시간이나 수명은 정해져 있으니,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동력, 즉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라는 소리다. 인생의 내리막보다는 오르막을 선택해야 비로소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도 조언한다. 나는 지금 오르막을 향해 가고 있을까? 내려올 걸 미쳤다고 힘들게 오르냐며 등산도 하지 않는 나인데.


오르막은 힘들다. 오르막을 오르려면 의도, 에너지, 결심, 수고, 끈기가 필요하다. 큰 그림에 시선을 고정하고, 마음을 굳게 먹고, 좋은 성품을 발휘하고, 시간을 들여야 한다. 올바른 일은 대개 어려운 법이다. 사람들이 점점 더 올바른 일을 안 하려고 하는 이유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쉬운 일을 선택하고 결국 오르막이 아닌 내리막을 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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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한 번 인천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직업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어느 학생이 이런 질문을 했다. “기자가 가져야 하는 자질은 무엇인가요?” 그러게. 기자가 가져야 할 자질이 뭘까.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 ‘자질’이라는 게 한 두 가지도 아니거니와 고등학생들에게 설명해서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도 답변은 해야 했다. 나는 “열정과 용기, 그리고 겸손”이라는 다분히 상투적이고 교과서적인 답 했다.

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세상에 부조리한 일이 많다고 해도 취재하지 않고, 기사도 안 쓰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현장에서 열정을 갖고 어떤 외압이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용기를 내서 기사를 쓰는 직업이 바로 ‘기자’이니까.

국민배우 최민식이 그랬다지. 내가 음식을 맛있게 끓여야 다른 사람도 맛을 보라고 할 것 아니냐고. 내가 맛없게 끓여놓고 맛을 보라고 하는 건 ‘사기’라고. 내가 미쳐서 맛있게 먹고, “이거 진짜 맛있다”라고 해야 한다고. 그런데 그걸 맛본 사람들이 “맛이 없는데”라고 하면, 그건 어쩔 수 없다고. 다만, 자신에게는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고.


기자도 그렇다. 기사를 쓴 기자 스스로 불량품이라는 걸 아는데, 그걸 사라고 진열대에 올려두는 건 그야말로 사기나 다름없다. 잘 쓴 기사든 못 쓴 기사든 판단은 소비자인 ‘독자’의 몫이다. 최소한 기자는 열정적으로 취재하고, 공들여 글을 썼기 때문에 한 점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조회 수나 늘리려고 욕심부리고, 광고 하나에 혹해 취재를 중단하거나 용비어천가를 읊거나, 내 처신하나 편 하자고 아무렇게나,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썼다가는 내리막만 자초할 뿐이다. 읽어줄 독자도 없다. 내가 넘어졌을 때 일으켜줄 사람 하나 없다.

욕심부리지 않고 가자. 한발 한발 천천히 가다 보면, 뭐, 좋은 날도 오지 않을까.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쩨쩨하고, 치사하게 살지 말자. 새파랗게 젊은 날은 지난 나이 아니냐고? 나이가 뭐 중요한가, 마음은 언제나 청춘인데.


마라톤이 아니라 산책으로서의 글쓰기를 원했다. “맥주, 맥주”하면서 고통스럽게 달리는 대신 맥주를 마시며 한들한들 쓰기로 했다(주의: 한 캔을 넘지 말 것). 글쓰기의 결과물로부터가 아니라, 쓰는 행위 자체에서 행복을 얻기 원했다. 요즘은 쓰는 내내 실없이 웃든가 혹은 울면서 마음을 순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글 작업을 즐기고 있다. **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아내와 호프집에서 맥주에 먹태를 뜯고 들어왔다. “맥주, 맥주”하면서 40대 중반의 삶을 도란도란 게워냈다. 소은성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한 캔은 넘었다. 이른바 ‘댓 병’을 시켜놓고 마셨다. 그래야 할 것 같은 저녁나절이었으니. 그래야 실없이 웃든, 울든 마음을 순하게 만드는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으니.


* 존 맥스웰 지음, 김고명 옮김『다시 일어서는 힘』(비즈니스북스, 2017) 163쪽

** 소은성『마음을 썼다 내가 좋아졌다』(웨일북, 2020) 2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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