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어제도 그제도, 1분 전의 일도 ‘과거’다. 지난 시간에 갇혀 있으면 오는 시간을 제대로 맞지 못한다. 맞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지난 일이고, 과거다.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다시 후회하지 않도록 마음을 ‘새로고침’하면 된다.
좋은 일이 있다면, 그 좋은 기분과 감정의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열심히 살면 되지 않을까. 앞으로 삶도 행과 불행의 연속일 텐데,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건 곤란하지 않은가. 가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나 자신에게도 플러스보다 마이너스가 될 확률이 높기도 하고. 내가 읽기와 쓰기, 달리기를 하는 것도 어쩌면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를 위함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처럼 긍정의 마인드는 40대 중년에 접어든 이들에게 정신적으로 선한 에너지를 주는 것 같다. 비관보다는 희망을 1%라도 더 갖고 살아보자. 닥치지 않은 일을 괜히 걱정하며 스트레스도 받지 말자. 어차피 벌어질 일은 벌어지게 돼 있고,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으니. 그러다 또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게 삶이란 시간의 속성이려니.
과거는 과거일 뿐이지만, 가끔 지치고 힘들 땐 지나온 날을 잠시 돌아보는 것도 나름 삶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되도록 좋았던 기억과 경험 위주로. 내가 우울증에 빠졌을 때 떠올렸던 옛날 영화관의 추억과 감나무꽃 필 무렵 ‘식민지 시대’나 오락실처럼. 애증의 관계였지만, 지금은 아련하면서도 그리운, 내 아버지도.
그렇게 보면 내 아버지는 청춘 시절이 없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무원이 됐고, 스물둘에 결혼해서 이듬해부터 내리 삼 년 동안 줄줄이 나온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불타는 청춘’을 어떻게 보내는지도 몰랐으리라. 삶 자체가 고단했으리라. 30대까지 어머니와 함께 자식들 뒤치다꺼리하고 나서인 40대에는 어땠을까.
아버지가 나와 같은 마흔 중반이었을 무렵, 난 대학을 다니고 있었을 텐데. 딱 아버지가 결혼했을 시절이었을 텐데. 어쩌면 그때부터 아버지에게 ‘인생의 허무’가 찾아온 건 아닐까. 이만큼 일하고, 저만큼 키웠으면, 목표를 달성했다는 생각이 들 만도 했으리라. 삶이 얼마나 지루하고 따분했을까. 그래서 자주 ‘술독’에 빠졌던 걸까. 그 쓴 소주 한잔에 과거와 현재, 미래를 따라 마셨을까. 나는 거기에 슬며시 맥주를 더 부어서 인생의 허무와 재미를 섞어 마시고 있다.
누구나 자연스럽게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관점을 가지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일정한 기억을 바탕으로 미지의 사태를 전망하는 와중에 부지불식간에 조직해내는 것이 이른바 시간의 흐름이다. 관점을 갖지 않는 존재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