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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Jun 30. 2023

출판사의 거절과 제안 사이

원고 투고 이후 받은 두 개 이메일

나름 성심껏 썼고, 공을 들인 원고다. 작가라면 글을 쓰는데 진심이니까. 그 진심을 담아 출판사에 투고했고, 각 출판사 역시 진심으로 검토했으리라. 어느 출판사는 원고를 잘 받았다는 회신을 주기도 했으나, 또 어느 출판사는 ‘수신확인’으로 만족해야 했고, 또 어느 출판사는 수신확인조차 하지 않으면서 내 맘을 졸였다.  

    

며칠 뒤, 한두 군데부터 투고 결과에 답장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대개 ‘땡’의 경우 출판사들은 별도로 연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부는 예의상 ‘거절 메일’을 보낸다. 그 메일의 내용은 “보내주신 옥고는 잘 받았습니다. 검토 결과 저희 출간 방향과 맞지 않아” 이런 식이다. 못 믿을 건 방송국 놈들 만이 아니다.(출판사 놈들 별..) 하긴, 출판사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원고가 들어오고, 편집인들도 ‘옥고’를 고르는 일이 쉽진 않을 테니.  

    

퍼뜩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가 출판사에 투고했을 때,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보냈는가. 열 곳, 스무 곳, 이메일 주소를 좍 늘어놓고 ‘복붙’으로 보내기에 급급하진 않았나. 출판사들의 거절 메일을 보니, 그들 역시 준비해 놓은 틀과 양식에 따라 아무 영혼 없이 보내는 게 아닐까. 그래도 생각해서 보냈으니, 최소한 예의는 차리겠다는 것처럼. 하지만 원고를 투고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작가에게는 그 역시도 고맙기 그지없다. 서운하긴 해도, 배려받았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어제 투고했던 한 출판사로부터 이메일이 도착했다. 역시 거절 메일이었다. 그런데 여느 거절 메일과 달랐다. 내용이 참 지극했고, 정성이 깃들어 있었다. 아, 나는 그제야 이것이 ‘소통’이고, ‘관계’이고, ‘이미지’라는 것이구나 실감했다.      


그들은 글 한 편 쓰기까지 지난했을 작가의 고된 작업을 감동적인 글로 어루만졌다. 위로와 격려와 응원을 담은 서사를 보내 나와 소통했다. 자신들의 출판사에 대한 수준(이미지)까지 극대화했다. 이것이 곧 ‘프로다’ 싶었다. 작품 전체적인 평가를 마음 상하지 않게 한 문장 한 문장에 담아 보냈다. 뭉클했다.     


같은 날, 난 다른 유형의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그 출판사에선 내게 출간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 제안이라는 게 참 기묘했다. 이른바 ‘반기획 출판’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해당 출판사에서는 내게 150권에서 200권을 부담할 수 있다면, 출간을 고려해 보겠다고 했다.     

 

출간 이후 작가도 지인들에게 사인본을 증정하거나 선물하려고 상당수의 도서를 구매한다는 이유도 댔다. 사족으로 ‘괜찮은 조건’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메일 하단에는 본인들 출판사에서 낸 책 중 베스트셀러를 첨부했다.      


그래, 코로나19 시기 출판시장도 많은 어려움을 겪어 책 한 권 내기가 쉽지 않은 출판사가 수두룩하다는 얘기는 들었다. 내 첫 책인 <슬기로운 기자생활>을 쓴 뒤 투고했을 때도 비슷한 제안을 받았으니까. 내가 출판시장에 문외한인 것도 있지만, 적어도 난 돈을 벌려고, 유명해지려고 글을 쓰진 않았다.      


그저 글쓰기가 좋았고, 내가 쓴 글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혼자 힘으로 벅차니 출판사의 힘을 빌리려고 했던 것이 ‘투고의 목적’이었다. 어떻게 작가가 자기가 쓴 책을 돈을 주고 살 수 있지? 사비를 들여 지인들에게 홍보나 선물을 한다? 그건 아니다 싶었다.      


아무리 출판시장이 먹고살기 팍팍해졌다곤 하지만, 작가정신을 함부로 훼손하면 곤란하다 싶었다. 그래서 난 그 메일을 거절했다. 작가는 자존심 하나로 글을 쓴다. 상업적으로 돈을 벌려고 했다면, 투고라는 채널을 통하지 않았으리라. 물질적인 부담을 각오한다면 책을 내는 방법은 너무나 쉬우니까. 그래도 그렇지, 그건 아니다 싶었다.      


나는 ‘거절과 제안’ 사이에서 글쓰기와 책 출간의 이유를 새삼 깨달았다. 그건 바로, 노력과 성찰과 정성과 예의와 겸손과, 그럼에도 수 없는 현실이었다.


*덧: 그나저나 눈 밝은 편집인이 쨘, 하고 나타나서 제 원고 좀 어떻게, 안 될까요?            


상단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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