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로서의 글쓰기
좋은 글을 쓰면 건강해지고, 수명도 늘어날까
글쓰기는 제 취미이자, 밥벌이입니다. 취미로 밥을 먹고산다는 건, 행운이자 행복입니다. 제 직업은 기자이자, 작가입니다. 기사를 쓸 때나 퇴근(혹은 주말·휴일) 이후 글을 쓰는 순간 저는 종종 ‘존재론적 자아’를 발견합니다. 쉽게 말해, 제가 ‘살아있음’을 확인한다는 겁니다. 아울러 ‘생산자’로서의 존재를 깨닫습니다.
숨 쉬며 살아있음과 동시에 생산자로서의 글쓰기란 무엇일까요? ‘쓰기’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기사는 밥을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제1 직업이기 때문에 쓰기 싫어도 써야 하는 글입니다. 억지로라도 써야 밥을 굶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쓰면 곤란하죠. 왜냐하면, 기자가 기사를 맘대로 쓰게 되면, 누군가에게 ‘독(毒)’이 되고 ‘해(害)’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리거나, 씻을 수 없는 상처, 치욕을 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자가 기사를 쓸 때는 ‘생산자’로서 의무와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불량품을 생산했을 때 발생하는 부정적 파급효과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니까요. 불량기사, 가짜 뉴스는 반품도 어렵습니다.
작가로서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사보다는 그 강도가 약할진 몰라도, 말도 안 되는 글을 읽고 난 독자들의 기분과 심리상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화와 분노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뭐 이딴 걸 글이라고 썼어’하며 욕을 하는 건 그래도 낫습니다. 다시는 그 작가의 글을 거들떠도 안 보겠죠. 그러니 글을 쓴다는 건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닙니다.
기자든, 작가든,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제가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그걸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한다면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까요? 얼마 못 가 관두거나, 관두지 않더라도 버티기 어려운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제게 있어 기사를 쓰거나 글을 쓸 때 가장 좋은 순간은 독자들의 반응을 볼 때입니다. 기사 조회 수가 많고, 응원의 댓글을 보노라면, ‘그래, 이 맛에 글을 쓰는 거 아니겠어’라며 므흣함을 느낍니다. 즐겁고 행복합니다. 잘한다, 잘 쓴다, 칭찬받으면 더 잘 쓰고 싶어 집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 아닐까요? 그러니까,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잘 썼건, 못 썼건, ‘좋아요(라이킷)’ 한 번 꾹 눌러주는 아량을 베풀어 주십사 청합니다.
며칠 전 만난 한 지인이 저더러 “전보다 변한 모습 같다. 좋은 쪽으로 변한 것 같은데, 비결이 뭐냐”라고 묻더군요. 사람이 변하면 금방 죽는다는데, 좋은 쪽으로 변했다는 소리를 들으니 백 년은 살 것 같습니다.
비결이 뭐 있겠습니까. 저녁때 술 적게 마시고, 운동 열심히 하고, 책 많이 보고, 글 열심히 쓰는 거겠죠. 그분은 “그러니까 그렇게 된 동기가 뭐냐”라고 묻더군요. 혹자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고 했거늘. 동기가 뭐 있겠습니까. 인기가 없으니 만나자는 사람도 없고, 혼자서 외롭게 청승 떨며 ‘혼술’이나 할 바에야 아령이라도 한 번 더 들고, 책이라도 한 장 더 보고, 글이라도 한 줄 더 쓰는 게 심신 건강에 좋으니까요. 좋으니까 하는 거죠.
오늘도 한 선배가 전화 통화 중에 비슷한 얘기를 하더군요. “요즘 후배님 사는 걸 보면 참 부러워. 어쩜 내가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걸 하면서 살 수 있을까?” 글쎄요, 개인적으로는 독서의 효과 아닐까 싶습니다. 책에서 그러더라고요.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고 살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자기 주도적으로 살라고.
핵심은 제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며 만들어내는 것이었고, 그것이 곧 생산자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삶을 위한 제 노력의 결과는 주로 콘텐츠로 나타났지요. 하지만 다른 분들의 경우에 꼭 콘텐츠여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품이나 영업, 기술 개발 혹은 자기만의 고객 응대나 집안 살림일 수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타인이 시켜서 수동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주도하며 뭔가를 하고 만들어내는 생산자로 사는 것입니다. 최인아,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해냄) 40쪽
인생 뭐 있습니까.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도 백 년을 살기 힘든데. 아 참, 저는 좋은 소리를 들었으니 백 년은 살수 있겠군요. 갑자기 제게 목표가 생겼습니다. 일단, 생산자로서의 글쓰기를 열심히 해서, 좋은 글을 많이 생산해 내고, 그걸 본 독자들에게 좋은 소리를 많이 듣고, 그걸 밑천 삼아 천년만년 살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