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박사가 오 박사 했다

석·박사 12년 여정을 마무리하며

by 류재민

나는 그녀를 “오 박사”라고 불렀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박사’가 되려고 부단히 애쓰는 모습을 수년간 옆에서 지켜봤기에. 어느 시인이 그랬다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내게로 와서 꽃이된 건, 그가 아니라 그녀이고, 그녀는 바로 내 아내다.


시인의 ‘꽃’ 같은 시처럼, 나는 그녀에게 ‘박사’라고 꾸준히 불러주면 언젠가는 그 꿈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었다. 정치부 기자를 오래 하며 터득한 사실은 "시장님", "의원님" 하고 불러주면 결국 그리 되더라는 거다. 마침내 그녀의 꿈은 이루어졌다. 그녀는 박사 과정을 시작한 지 7년여 만에 내 앞에 박사 학위 논문을 내놓았다.

솔직히 나는 박사가 별거 아니라고 여겼다. 국회에서 열리는 토론회 취재를 갈 때마다 발제자나 토론자 중 박사는 흔하디 흔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회관 (개나소나) 문지방에 걸려 넘어질 정도로 넘쳐나는 게 박사였기에. 박사가 뭐 대단하냐고 터부시 했다.


그런데 오 박사의 지난 여정을 곁에서 지켜보니 실로 ‘박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자, 이제부터 오 박사의 지난했던 학위 과정을 거슬러가 보자.


오 박사의 지난했던 7년의 결과물.

오 박사는 명문대 출신이었다. 누구나 알만한 ‘스카이’ 중 한 대학 출신이다. 그런 그녀가 학사를 마치고 똥을 밟았다. 4대 독자 장남에, 지방대 출신에, 월급 99만 원을 받는, ‘듣보잡’ 지역 신문사 기자를 만났으니. 그래서 장인어른은 결혼 10주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까지 나를 선녀 옷을 훔친 나무꾼 대하듯 한다.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도 아니고, 기‘자’라니.

오 박사는 괘념치 않았다. 무슨 믿음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나와 덜컥 결혼해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시즌 2를 찍으면서 살았다.


2010년 결혼 이후 1년 만에 첫 아이를 가졌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공부가 하고 싶다고 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내가 우주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공부’이기 때문이다.


첫애를 임신한 2011년 석사를 시작했다. 보통 일반대학원은 4학기(2년)지만, 그녀는 특수대학원을 다녀 5학기를 마쳐야 했다. 젖먹이를 장모님한테 떼놓고, 장모님은 아내가 짜 놓고 간 젖을 데워 먹이며 큰애를 키웠다.


2년 터울 둘째를 임신하고도 대학원을 다녀야 했고, 만삭에 석사 학위 논문을 쓰느라 개고생 했다. 그래도 휴학 한번 없이 2013년 석사를 끝냈다. 그리고 전공을 살려 언어치료 센터를 다녔다. 지금도 다니고 있다. 그사이 부업으로 암웨이 사업도 시작했다. 난 그사이 술만 마시고 다녔다.

그녀가 박사를 하겠다고 한 건 그로부터 3년 후. 2016년 큰애는 6살, 작은 애는 4살이었다. 그사이 2019년과 2020년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생겼다. 햇수로 2년을 하릴없이 보냈다. 감이 떨어질 만했고, 학구열도 식을 만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끝끝내 2023년 7월 박사학위 논문을 마쳤다. 논문 표지에는 2022학년도라고 쓰여 있는데, 그건 여름학기 졸업까지는 전년도로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사는커녕 석사도 못 해본 나는 그런 것조차 몰랐다. 그러면서 박사를 개무시 별것 아닌 듯 치부했다. 반성하고 후회한다.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이 그랬다. ‘실패한 자가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한 자가 패배하는 것’이라고. 포기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으면, 내가 그녀를 박사라고 불러줬듯이 그녀도 내게로 와서 박사가 될 수 있다. 그사이 큰애는 6학년, 작은애는 4학년이 됐다. 만 12년 만에 오 박사가 오 박사 했다.

고해성사하는 심정으로 나는 다음 달 그녀의 박사학위 수여식에 휴가를 내고 참석할 예정이다. 장미꽃 백송이 사면 “인간아, 그걸 돈으로 주지”라고 퉁 먹을 것 같다. 그래서 꽃 살 돈을 차라리 현금으로 줄 생각이다. 난 그렇게 그녀의 12년 여정의 종지부를 찍을 참이다.

그런데, 난 돈이 없다. 아, 다음주에 고등학교 강의 하나 잡혔다. 강의료 받아서 주면 되겠다.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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