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딸이 생애 첫 외박을 하러 갔다

노란 버스 말고 빨간 버스 타고 간 수학여행

by 류재민

초6 딸이 1박 2일 수학여행을 갔다. 엄마 아빠를 떠나 생애 첫 외박이다. 며칠 전부터 한껏 들떠 ‘D-day’를 알리며 ‘아기다리 고기다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학여행을 못 갈 뻔한 사연 때문이다. 딸은 당초 지난 7월 말 수학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을 남겨 놓고 여행이 취소됐다. 그 얼마나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을까.


딸은 입이 댓 발 나왔고, 눈물을 글썽일 정도로 몹시 서운해했다. 딸의 어깨를 축 늘어뜨리게 만든 건 이른바 ‘노란 버스 사태’였다. 이 사태는 지난 10월 법제처가 현장 체험학습에 전세버스가 아닌, 어린이 통학버스(노란 버스)를 사용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으면서 벌어졌다.


하지만 노란 버스는 물량이 적어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노란 버스를 구하지 못한 학교들은 체험학습과 소풍, 수학여행을 줄줄이 취소했다. 초등학교 시절 마지막 추억을 남길 기회가 날아갈 뻔한 순간이다.

정부는 논란이 확산하자 수학여행에 어린이 통학버스 외에 일반 전세버스도 이용할 수 있도록 관련 규칙을 바꿨다. 천당과 지옥을 롤러코스터 타듯 오갔다. 우여곡절 끝에 딸이 수학여행을 가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전세버스 업계 타격도 만만치 않다고 하니, 아휴.

딸이 오늘 타고 간 빨간 버스.

수학여행과 현장학습이 몰리는 9월에서 11월 중순의 예약이 ‘노란 버스’ 대란 당시 줄줄이 취소된 뒤 회복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전세버스 단체가 집계한 하반기 전국 전세버스 업체의 현장학습 취소 건수는 천8백여 건으로, 액수로는 170억 원에 달합니다. ‘노란버스’ 대란으로 코로나19 이후 4년 만에 대목을 맞기는커녕, 법 개정에 걸었던 기대마저 물거품이 된 겁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행정에 버스업계는 물론, 소중한 추억을 남겨야 할 학생들마저도 피해를 떠안게 됐습니다. 2023년 11월 6일, YTN, <‘노란버스’ 논란 진행 중?...“현장학습 안 가요”에 버스업계 직격타>

딸은 오전 8시까지 학교에 가야 한다며 전날 저녁 7시부터 자러 들어갔다. 그리곤 몇 번을 깨고 자고 한끝에 오전 6시에 일어났다. 그 심정을 왜 모르랴. 출근길, 딸의 학교 앞을 지나다 전세버스 행렬을 발견했다. 딸과 친구들을 태우고 수학여행을 떠날 버스였다.


버스 색깔은 노란색이 아니라 빨간색이었다. 노란색이면 어떻고 빨간색이면 어떠하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될 일. 어쨌거나 저쨌거나 딸은 오늘 수학여행을 떠났다. 경복궁도 가고, 국립 중앙박물관도 가고, 에버랜드도 간단다. 퇴근 무렵, 딸한테 전화가 왔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이라며. 같은 방을 쓰기로 한 친구가 아파서 여행에 오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래도 재밌게 놀고 있다는 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놓였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내일 보자고 했다. 딸은 “이따 숙소 들어가서 또 전화할게”라고 했다. 손바닥만 했던 녀석이 언제 저렇게 컸나, 한편으로는 대견하고 한편으로는 시간이 참 빨리 흐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마음 한구석댕이가 시려왔다.

잘 대녀 오니라. ^^v

‘애들은 크고, 부모는 늙는다’ 이 만고 불변의 진리를 되새기면서 초4 아들이 사 오라는 붕어빵을 들고 집으로 간다. 노란 버스, 아니 빨간 버스야, 부디 내 새끼 안전하게 잘 태우고 다니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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