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의 졸업식

일흔에 중학교 졸업, 그 나이가 어때서

by 류재민

어머니가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것도 나이 칠순에. 국민(초등)학교 졸업이 당신 인생의 최종 가방끈이 되어선 안 된다는 의지였을까. 3년 전, 내 어머니는 그렇게 중학교 교문을 들어가셨다. 들어는 봤는가, 방송통신중학교. 코로나가 터지면서 격주마다 가던 학교 수업은 그마저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었다. 만학의 꿈을 품고 모인 또래들과 만남도 한동안 못했다.


그래도 어머닌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꼬박꼬박 온라인 수업을 들었고, 시험을 보면 늘 1등이었다. 아내는 주말마다 어머니가 계신 시골집으로 출동해 과외를 하며 학업을 도왔다. 그 덕에 졸업식 행사에서 내 어머니는 국회의원상을 받았다.


3년 전, 어머니 중학교 입학식 때 학교 정문 앞에서.

어머니는 리더십도 탁월했다. 3년 내내 학급 반장을 맡았다. 그 나이 때 어른들이라면 서로 반장을 하겠다고 손 들었을 이가 많았을 텐데, 학기 초마다 만장일치로 선출됐다. 싹싹하고 털털한 성격에 동급생들도 인정한 모양이다. 그 덕에 어머니는 교실에서 옛날 교복을 입고 졸업 기념사진을 찍을 때 앞줄 맨 가운데에 앉았다. 반장으로 봉사한 자에 대한 예의였으리라.

부정맥. 어머니가 앓고 있는 지병이다. 늘 불안하고 조마조마하다. 시골에서 혼자 계시니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걱정이 우리 동네 태조산보다 높다. 코로나가 풀리고 등교가 재개됐을 때,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도 어머니는 외출증을 끊어 일요일마다 학교에 갔다. 그 덕에 졸업식에서 개근상을 받았으리라. 내 어머니는 그런 분이다. ‘독종’.


“공부? 무진장하고 싶었지. 근디 어쩌냐. 위로는 오빠랑 언니가 있지, 아래로는 남동생이 둘이나 있는디. 내가 어찌 중학교를 간다고 하겠냐, 그 시절에.”


여기서 방점은 ‘그 시절에’에 찍혔다. 그래, 그 시절을 산 여자들은 다 그랬다. “계집애가 무슨 공부고 학교여! 집에서 밥이나 짓고 동생들 보다가 크면 시집가는 거지!” 이런 기상천외한 논리가 먹히던 시대를 살았던. ‘젠더 평등’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취급받던 시대를 산,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그 피해의식이 가슴 한구석에 가시처럼 콕 박혀 지금의 독종을 만들었으리라.


내 어머니의 졸업식. 김지철 충남교육감과 함께.
아픈 몸에도 3년 개근상과 국회의원상을 받았다.

어머니가 중학교에 간다고 했을 때, 나는 안도했다.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까막눈 노인들만 수북한 촌 동네에서 얼마나 적적하고 답답하실까, 걱정이 태조산 옆 흑성산보다 컸으니까.

그렇게 학교라도 다니면서 비명에 떠난 이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기를 바랐다. ‘고상하며 유식한’ 어른들과 어울리며 노년을 보내길 바랐다. 그 덕에 어머니는 인수분해와 방정식을 4년제 대학 나온 아들보다 잘 풀고, 내년에 중학교에 들어가는 손녀에게 수학책을 꺼내 알려줄 수 있으리라. 반 친구들과 놀러도 다니고, 졸업여행도 다녀왔으리라.


내 어머니는 내년 3월 방송통신고에 진학할 예정이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부설. “인저, 니 에미가 니 후배가 된다잉.” 어머니는 나를 바라보며 흐흐 웃었다. 졸업식은 한 시간 남짓 진행됐다.


행사가 끝난 뒤 동생 식구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예약해 놓은 교외 식당으로 향했다. 올해 칠순, 어머니 생일잔치를 위해.

울 엄마 졸업사진.


“아버지도 읍는디, 한복 입고 동물원 원숭이마냥 혼저 앉아있기 싫다. 증 하려면 식구들끼리 밥이나 먹자. 비행기 탈 자신도 읍써. 낭중에 우리 반 칠순 친구들이랑 국내여행이나 갈란다.”

풍악과 밴드까진 아니어도 주변 친지들 모시고 뷔페에서 식사라도 해야지 했던 계획은 수포에 그쳤다. 하와이는 아니어도 베트남 정도는 모시고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와야지 했던 계획도 ‘없던 일’로 됐다. 우리보다 친구들과 여행이 칠십 배 나을 성싶었다. 해외여행 경비를 용돈으로 드렸다.

인적 드문 중국집에서 코스요리를 시켜놓고 맛있게 드시는 어머니 얼굴을 보자 눈물이 울컥했다. 내 초등학교 시절 졸업식이 생각났기 때문에. 난 초등학교 졸업식 때 학교 앞에 딱 하나였던 허름한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처음 먹어봤다. 어머니가 졸업 기념으로 사 준.

졸업식이 끝난 뒤 중국집에서 동생 식구들과 칠순연도 가졌다. 어머니, 건강하세요. 사랑해요^^

어머니는 자장면을 한 그릇만 시켜 나만 먹였다. 새벽에 누룽지를 먹어 배도 부르고 속도 안 좋다고 했다. 내가 너무 많다고 하니 그제야 젓가락으로 몇 가닥 집어 앞 접시에 놓고선, 노란 단무지만 계속 드셨다. 그때 어머닌 누룽지를 드시지도 않았고, 속이 안 좋다는 것도 다 ‘뻥’이었다. 혹여 내가 더 먹고 싶다고 할까 봐, 당신 앞 접시에 덜어놓은 몇 가닥 면발도 남겨 두고 신 단무지만 씹고 계셨던, 그날의 추억.


식당 벽에 건 현수막 글귀에 내 마음은 다시 먹먹해졌다. ‘꽃보다 예쁜 우리 엄마’ 그래, 내 어머니는 세상 그 어떤 꽃보다 아름답다. 그리고 앞으로 더 아름답게 사실 거다. 이제는 나와 동생들이 어머니의 ‘꽃길’이 되어드리리라.

내 어머니, 오세분 여사님! 졸업과 생신 축하드립니다. 건강하셔서 대학교까지 가세요. 등록금은 제가 대려니.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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